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용악의 <오랑캐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2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3)





 


오랑캐꽃


이용악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띠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오랑캐꽃제비꽃을 일컫는 것이다. 사실 봄날 산과 들에 나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제비꽃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핀다고 하여 제비꽃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시의 첫머리에 소개하듯이 우리 조상들은 꽃 모양이 오랑캐의 뒷머리와 비슷하다하여 오랑캐꽃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외에도 장수꽃, 씨름꽃, 병아리꽃, 외나물, 앉은뱅이꽃, 가락지꽃…… 등 지역마다 그 이름이 아주 다양하다고 한다.


이용악은 그의 시 <오랑캐꽃>에서 꽃 이름의 유래를 시 마지막에 붙였는데, 시집에 수록하면서 제목 아래에 곧바로 이어 놓았다. 사실 오랑캐라고 하면 우리 역사 속에 항상 북방 국경에 마주하고 있던 여진족을 일컫는 것이다. 시에서는 그 오랑캐는 고려 장군님에 쫓기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발표 시에는 고구려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화자는 고려 장군의 입장에서 오랑캐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랑캐꽃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정을 함께하며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1연은 고려 군사에 의해 오랑캐가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이다. 화자가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단다란 말을 빌려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사실 고려의 입장에서는 여진족을 몰아낸 승리의 쾌거였지만 여진족의 입장에서는 민족의 수난일 것이다. 따라서 고려 사람들이 붙였다는 오랑캐꽃이란 이름은 여진족의 입장에서는 망국의 슬픔이 배어 있는 것이다.

2연에 보이는 구름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의미하는데, 고려시대와 시 속의 현재를 이어준다. 3연에서 화자는 오랑캐꽃이란 이름이 붙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이름은 오랑캐꽃이다. ‘돌가마털메투리같은 여진의 풍속에서 쓰이는 것들을 알지 못하지만 오랑캐꽃이다. 더구나 오랑캐가 가져와 심은 꽃이 아니다. 분명 고려(고구려) 땅에 피었고, 계속해서 고려(고구려)의 땅에 필 꽃인데 이름에는 오랑캐가 붙어 있다. 오랑캐꽃 입장에서는 이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런 억울함을 아는 화자는 오랑캐꽃을 연민과 애정으로 대한다. 그렇기에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의 연민과 애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진정 오랑캐꽃이 억울하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이 시가 발표된 시대를 읽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시인은 오랑캐꽃을 보며 고려적 여진족처럼 왜놈들에 의해 고향과 나라는 물론 삶의 터전마저 잃고 만주로 떠도는 우리 민족을 생각한 것이 아닐까. 사실 오랑캐의 뒷머리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억울함이 나라를 빼앗긴 당대 우리 민족의 억울함과 연결이 되는 것이요 이러한 동병상련이 오랑캐꽃을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막아주겠다고 한 것이 아닐까.

맞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시대 상황이 변했다 하더라도, 고려 군사들에 쫓겨 도망한 여진족의 운명과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화자는 이런 점에서 오랑캐꽃을 보며 우리 민족의 설움을 느끼는 것이요, 그러니 오랑캐꽃의 설움은 온전하게 우리 민족, 아니 화자로 변한 시인 이용악의 설움이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내 눈에는 이름과 달리 그저 예쁘기만 한데 오랑캐꽃을 보며 시인 이용악은 어찌 고려시대(혹은 고구려)와 일제 강점기를 연결시키고 여진족과 조선민족을 하나로 보았을까. 시인의 역사의식에 고개를 숙이고 그의 시적 상상력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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