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최재영의 <능소화>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3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5)







능소화(凌霄花)


최재영


한동안 넝쿨만 밀어 올리던 능소화나무

좁은 골목길 담장에 기대어

황적(黃赤)의 커다란 귀를 활짝 열어젖힌다

한 시절 다해 이곳까지 오는 길이

몽유의 한낮을 돌아 나오는 것 같았을까

지친 기색도 없이 줄기차게

태양의 문장들이 돋아난다

서로를 의지하는 것들은

보지 않아도 뒷모습이 눈에 익는 법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속내를 주고받던 담장이

울컥, 먼저 뜨거워진다

누군가에게 이르는 길은 깊고도 고되어

이리 눈물겨운 기억만으로도 다시 피어나는 것이니

묵정밭 잡풀들도 온 정성으로 피어난다 했으니

내겐 꽃시절도 서릿발처럼 매운 까닭이다

온 몸의 촉수를 열어 발돋움하는 어린 잎들

그들의 발 빠른 행적이 퀴퀴한 골목을 쓰다듬는다

막 당도한 여름들이 능소화 곁으로 모여들고 있다

 

 

내가 사는 부천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가로등에 화분을 걸고 거기에 능소화를 심어놓았다. 화분에서 자란 능소화나무는 그 줄기를 높게까지 뻗어 올리며 자라고 여름이면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낸다. 노란 듯이 붉은 꽃들이 피어난 거리를 지날 때마다 조경으로는 참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재영의 시 <능소화>를 읽으면, 부천시의 가로등에 핀 꽃보다, 대구 달성에 있는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와 아산의 맹씨행단흙담길에서 만났던 능소화가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 시의 제목이 능소화이듯이 시 속에서 화자는 능소화가 자라고 꽃을 피우는 것을 묘사하며, 그 안에 능소화의 삶의 자세까지 천착한다. 하긴 시인이 환경조경학과 교수 신분이니 오죽 능소화를 잘 알겠는가. 그러나 학술적 혹은 조경 분야에서 다루는 것과 시로 형상화한 능소화는 다를 것이다.

넝쿨만 밀어 올리던능소화가 피어난다. 바로 좁은 골목길 담장에 기대어’ ‘황적(黃赤)의 커다란 귀를 활짝 열어젖하는 것이다. 개화를 귀를 활짝 열어젖히는 행위으로 파악하는 시인. 그런데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꽃이 피기까지 몽유의 한낮을 돌아 나오는 것 같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지친 기색도 없이 줄기차게 / 태양의 문장들을 피워내는 것이다.

담장에 서로 의지했기에 보지 않아도 뒷모습이 눈에 익었을 터이고 그렇기에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속내를 주고받던 담장이정작 꽃을 피워낸 능소화보다 울컥, 먼저 뜨거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능소화가 꽃을 피우는 과정은 깊고도 고되기에 눈물겨운 기억만으로도또 다시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그렇게 꽃을 피워내는 어느 순간인들 소홀히 했겠는가. 온 정성 기울였기에 능소화 자신에게는 꽃시절도 서릿발처럼 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꽃이 피어난 후에도 어린 잎들은 계속하여 온 몸의 촉수를 열어 발돋움하고 그렇게 뻗어가는 능소화의 발 빠른 행적이 퀴퀴한 골목을 쓰다듬는다.’ 꽃을 피워내는 능소화의 열정 그렇기에 화자로 변한 시인의 눈에는 막 당도한 여름들이 능소화 곁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개화를 귀를 활짝 열어젖힌다고 표현하고, 피어난 능소화를 태양의 문장이라 칭하며, 개화의 어려움을 알기에 흙담장이 울컥, 먼저 뜨거워진다고 묘사하고, 여름이 모여들고 있다는 표현들…… 능소화가 마치 눈 앞에 보이는 듯하지 않은가. 이런 표현들 - 조경학과 교수가 아니라 시인의 눈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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