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신대철의 <박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3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6)





 


박꽃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초가지붕 마루에 / 흰옷 입은 아가씨 / 부드럽고 수줍어 / 황혼 속에 웃나니……

이희승은 그의 시에서 박꽃을 배꽃, 장미, 백합보다 부드럽고 수줍어하는 꽃으로 형상화했다. 일반 독자들이 박꽃을 보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신대철은 박꽃을 다르게 인식한다. 바로 낮과 밤의 대비이다.


박꽃은 밤에 핀다고들 한다. 여기서 시인은 밤이라는 시간이 어떠한지를 설정하고 박꽃이 밤에 피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더구나 박꽃이 피는 밤은 세 걸음 이상 / 물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세 걸음 아마 초, , 삼경을 지나는 동안 이미 박꽃이 핀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낮은 어떤 모습이기에 그럴까. 시 속의 내용을 빌면 낮은 벌떼 같은 사람들이 떠들고, ‘이 흘러내리며, 온갖 뜬소문이 난무하고 담비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낮은 시끄럽고 혼잡하기만 하다. 이러한 모습을 생명이 살아 숨 쉰다거나 아니면 생존경쟁의 활기찬 모습이라 하여 그 활동성을 강조할 수도 있지만 시인에게는 아니 박꽃에게는 꽃을 피울 시간으로 적당하지 않다.

그렇기에 박꽃은 밤에 핀다. 밤은 벌떼 같은 사람들은 잠들고, ‘은 감춰지고 별의별 뜬소문도 잠들며 담비들마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는 시간이다. 낮에는 벌떼라든가, , 뜬소문, 담비들의 온갖 잡소리에 물소리는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래서 사위가 조용해지면 물소리가 오롯이 물소리로 들리는 시간이다.


아귀다툼의 시간인 낮이 아니라 물소리가 물소리로온전하게 들리는 밤. 바로 자연이 자연 그대로의 소리로 들리는 그 시간에 박꽃이 핀다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인 신대철이 인식한 박꽃의 특성이다. 희다 못해 창백한 박꽃 시인은 왜 밤에 피는지를 통해 박꽃을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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