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정훈의 <동백(冬柏)>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3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7)





 


동백(冬柏)


정훈


백설(白雪)이 눈부신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정훈의 시 <동백(冬柏)>은 동백꽃을 시간적, 공간적, 촉각적, 시각적 이미지로 잘 형상화한 수작이다.


백설겨울이다. 시간이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에 겹쳐서 백설’ - 흰 눈이라는 색채까지 강조된다. ‘하늘 한 모서리’ - 공간적 배경이지만 거기에 흰 눈과 대비되는 푸른 하늘빛이 겹쳐진다.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말하면서도 거기에 이렇게 시각적인 색채까지 뚜렷하게 대비해 놓았다. 그리고는, 동백이 핀 곳이 뜨락이나 길 옆 혹은 뒷곁이 아니라 하늘 한 모서리란다. 시인의 공간 감각은 우주를 넘나든다. ‘다홍’ - 붉은 빛은 다시 시각적 이미지이다. ‘차가울사록’ - 촉각적인 이미지이다.


그렇게 동백꽃을 제시해 놓고 화자는 그 꽃을 불로 본다. 바로 사모치는 정화(情火)’이다. 정에 불이 붙으면 어떤 느낌일까.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그냥 가슴으로 느낄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꽃에게 묻는다. ‘그 뉘를 사모하기에 /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라고.

동백꽃이 피는 것은 식물의 성장 과정의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니 꽃이 특정 대상을 사모하여 겨울에 애태워 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 그런 것이리라. 바로 감정이입이다. 즉 화자는 이 겨울, 흰 눈 속에 누군가를 사모치게, 애태워 그리워하고 있다. 결국, 화자의 누군가를 사모하는 마음이 동백꽃으로 형상화되었을 뿐이다.

흰색과 푸른색 그 사이에 붉은 빛의 동백꽃. 차가울사록에 이어지는 불. 여러 이미지들이 이렇게 대조가 되는데 그 한가운데에 겨울의 추위 속에 피는 동백꽃의 정열을 부각시켜 바로 화자의 마음을 그려낸다. 감정 이입된 독백을 통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화자의 정열이 마치 자신이 아니라 꽃이 그러한 것처럼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하는 영탄적 설의(設疑)로 대신한다.

시가 참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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