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신용목의 <민들레>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3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





 


민들레


신용목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신용목 시인이 1974년생이니 마흔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이 <민들레>는 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쓴 시란다. 한창 젊은 시절에 쓴 시 누군가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읽힌다.


흔히들 젊은 시인의 작품이 난해하다고 하는데 신용목의 <민들레>는 그렇지 않다. 이 시에 무슨 해설이 필요할까. 그저 읽으면 가슴에 닿는 시이다. 사랑을 고백할 때, 연애편지에 한 번쯤 써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 씨앗들은 참 예쁘다. 어쩌면 그렇게 동그랗게 모여 있을까.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훨훨 날아가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민들레에게는 종족 번식의 일이라지만 바라보는 인간의 눈에는 자연의 신비와 함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민들레 씨방을 가장 높은 곳으로, 그곳에 달아놓은 으로 파악하고 이것이 바람에 날릴 때를 가리켜 날개를 단다고 한다. ‘오직 사랑은 /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 민들레 씨앗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지만 시인은 이를 몸을 비우는 것으로, 그리고 그대에게 날아가는 것으로 파악한다. 멋지지 않은가.


2연은 더 강렬한 사랑을 노래한다. 비록 먼지솜털이 아니지만, ‘그것이 아니면즉 사랑이 아니면 흩어지고 부서져 버리려고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두 연으로 행갈이를 한 두 줄에서 사랑의 맹세, 지조 혹은 정절까지 말한다.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라니. 내 육체를 굴복시킬 수는 있어도 정신까지는, 사랑하는 내 마음까지는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사랑인가.

노란 민들레 그리고 목을 길게 늘인 것 같은 동그란 씨방…… 이를 보고 어찌 이렇게 간절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까. 시인이기에 그렇다 치지만 부럽다 못해 시샘이 날 지경이다. 시를 곱게 베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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