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정규화의 <영산홍>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4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0)





 


영산홍


정규화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리움은 색깔이 분홍이라는 것을

영산홍은 일제히

분홍색 꽃을 들고

창원역 앞에 서 있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리움을 담은 가슴이 있다


나도 영산홍 한 송이 바라보며

내게도 그리움이 있는가를

가만히 생각했다

 

 

영산홍4~5월에 피며 겨울에도 잎이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원예 품종이 있고 꽃은 붉은색, 흰색, 분홍색 등 다양하며 일본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온실 및 남부지방에 많았는데 지금은 개량이 되어 초여름까지 전국적으로 피어 있다. 도로변 화단이나 공원 등지에 심어놓은 이 영산홍을 흔히 철쭉으로 오인하는데 철쭉과는 전혀 다른 꽃이다.


시인도 창원역 앞 화단에 피어 있는 분홍색 영산홍을 본 모양이다. 한 무더기 피어 있는 분홍빛 영산홍을 보며 시인은 문득 그리움은 색깔이 분홍이 아닐까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시인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생각의 주체가 영산홍인 것처럼 미뤄버린다. 그리곤 영산홍이 어떻게 알아냈을까하고 감탄까지 해댄다.


창원역 앞의 영산홍이 일제히 / 분홍색 꽃을 들고서 있다는 것은 시인에게는 그만큼 강한 그리움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아가 그 강한 그리움은 창원역 앞을 지나다 그 꽃을 본 사람들까지 그리움을 담은 가슴이게 만든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래 놓고 시인은 슬쩍 자신에게도 그런 그리움이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따진다면야 시인이 사기를 친 것이나 진배없다. 그리움의 색깔이 분홍이라는 것을 영산홍이 알고 분홍색 꽃을 피웠다는 것이고 그 꽃을 본 사람도 그리움을 느끼게 되고 시인도 그랬다는 것 모두가 시인의 말장난이지 않은가. 그런데 묘하다. 정규화의 시 <영산홍>을 읽다보면 독자도 어떤 그리움을 떠올리게 된다.


맞다. ‘영산홍 분홍빛 그리움을 연결시키며 영산홍을 바라보는 시인의 사색에 독자도 공감을 한 것이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이 시에 보이는 그리움은 단순하고 상투적인 그리움이 아니라 극적인 그리움이기에 시를 읽는 나도 평범한 독자가 되어 내 그리움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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