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해화의 <씀바귀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4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2)





씀바귀꽃


김해화



요러케 크대먼 아그가 어찌게 애기다요 반 차비 내시오

핵교도 안 댕긴디 뭔 차비를 낸다요

반 차비 내랑께라 아직 애기랑께 그러네


및 학년이냐 나 학교 안 댕개라

집 나서 신작로까지 걸어나오며

어머니 내 귀에 못 박았지

나는 아직 학교 안 댕기는 이학년


옥신각신 내릴 곳 한참 지나

흙먼지 속에 보따리 내팽개치고 가는 버스

어메 저런 호랭이 물어갈 놈

보도씨 내 차비 꿔가꼬 왔는디 반 차비가 어딨다냐 반차비가


어디 가는 길이었을까

가난한 보따리 머리에 이고

학교 안 댕기는 이학년 머슴애 앞세우고

봄날 어머니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한나절

그 황톳길 끝 누구 있었을까

외삼촌 큰고모 작은이모 떠오르지 않고


길가에 하늘하늘 씽개꽃

몇 구비 길모퉁이 돌고 돌아도

씽개꽃만 피어 있던 길

 

 

시 속 내용을 따라가 본다. 오래 전, 시 속 화자인 시인의 어린 시절,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생긴 일이다. 요금을 받던 버스 기사와 커다란 짐과 아이를 동반한 여인 사이에 요금 시비가 붙었다.

 

기사 : 요러케 크대먼 아그가 어찌게 애기다요, 반 차비 내시오

여인 : 핵교도 안 댕긴디 뭔 차비를 낸다요

기사 : 반 차비 내랑께라

여인 : 아직 애기랑께 그러네

 

기사는 아이에게 직접 묻는다.

 

기사 : 및 학년이냐

아이 : 나 학교 안 댕개라

 

실제는 국민학교 이학년이지만 집 나서 신작로까지 걸어나오며 / 어머니 내 귀에 못 박았지 / 나는 아직 학교 안 댕기는아이였으니 아이의 대답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였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다가 버스 기사는 여인이 내릴 곳 한참 지나 / 흙먼지 속에 보따리 내팽개치듯이 내려주고는 가버렸다. 여인은 혼잣말처럼 욕을 해댄다. ‘어메 저런 호랭이 물어갈 놈 / 보도씨 내 차비 꿔가꼬 왔는디 반 차비가 어딨다냐 반차비가라고. 가난한 살림살이에 겨우 본인의 차비만 구해 길을 나섰는데 어떻게 아이의 차비 반값을 낼 수 있었겠는가. 차비를 아낄 요량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껴야만 하는 살림살이였을 것이다. 버스 기사에게 그런 무안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여자. 바로 시 속 화자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런 일이 있던 날이 어디 가는 길이었는지를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가난한 보따리 머리에 이고 / 학교 안 댕기는 이학년 머슴애 앞세우고 / 봄날 어머니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한나절걸었던 기억만 있다. 외삼촌네로 가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큰고모나 작은이모네로 가는 길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묘하게도 화자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한참 지나 내팽개쳐지듯 버스에서 내린 두 모자가 터벅터벅 걸을 때 어린 아이였던 화자가 보았던 꽃, 바로 씽개꽃이다.


길가에 하늘하늘 씽개꽃 / 몇 구비 길모퉁이 돌고 돌아도 / 씽개꽃만 피어 있던 길’ - 독자들은 감지할 것이다. 바로 이 마지막 연이 평범한 추억의 일기장일 글을 시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어머니의 거짓말을 안다. 그렇다고 버스 기사에게 이학년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없다. 구체적이지는 않겠지만 어머니가 왜 그런 거짓말을 시키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괴롭다. 그렇기에 몇 구비 길모퉁이 돌고 돌아도그 괴로움을 잊을 수 없다. 때문에 세월이 흐른 후 그 길이 친척 누구네에 갔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길 가에 피어 있던 씽개꽃만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씽개꽃이란 씀바귀꽃를 일컫는 전라도 말이다. 시 전편에 담겨 있는 전라도 방언은 토속적이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말이다. 그러니 고급스럽다거나 우아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삶이 진솔하게 담겨 있는 우리들의 말이다. 바로 화자의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살이와 그것을 이겨내야만 했던, 어쩌면 악착같았던 어머니의 삶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학년 아들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라고 거짓말을 시켜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시 속 화자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날 버스에 내려 길을 걸으며 오로지 길 가에 핀 씀바귀꽃만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시인의 눈에 씀바귀꽃은 바로 우리네 가난한 살림살이는 물론이요 어머니의 강한 생활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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