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동명의 <수선화>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4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3)





수선화

 

- 김동명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나르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 곳 없는 정열을

가슴 깊이 감추이고

찬 바람에 빙그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創作集)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小曲)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김동명의 시 <수선화>는 시 자체보다는 오히려 김동진 작곡의 가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가 시와 음악에 문외한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김동명의 시를 아무리 읽어도 실제 수선화라는 꽃의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이는 가곡도 마찬가지이다. 가곡이라고 하면, 시를 읽은 작곡가가 시에서 얻은 영감을 멜로디란 장치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시에 멜로디가 붙은 김동진의 곡 선율을 가사, 즉 시와 함께 음미하며 아무리 들어도 수선화라는 꽃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김동진 작곡의 가곡 <수선화>는 멜로디가 아름다워 가사보다는 그 선율에 취해버리게 되고, 김동명의 시는 시적 대상인 실제 꽃 수선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꽃 이름의 유래 혹은 꽃말에서 시상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

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듯이 수선화를 흔히 나르키수스(Narcissus)라 부른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르시스가 누구인가. 신화의 내용에 따르면 나르시스라는 청년이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하여 물속으로 들어가 빠져 죽었는데, 그곳에 수선화가 피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에서 유래하여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주의(自己主義)’ 또는 자기애(自己愛)’를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르시즘이란 정신분석학의 용어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수선화는 어떤 꽃인가. 비늘줄기 형태의 구근을 수확했다가 다시 이를 심는데, 추위에 강해 가을에 심으면 땅 속에서 겨울을 나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운다. 바로 겨울을 이겨낸 꽃, 구근 형태로 남았다가 다시 피어나는 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이란 구절이 나오고 시의 마지막 구절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부분이 바로 겨울나기에서 온 것이다. 그런 구절 외에는 사실 시 전체의 내용이 신화 속 주인공 나르시스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실제 꽃 수선화의 이미지와 혼합이 되어 있다. 그러니 아무리 시를 읽어도 신화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게다가 겨울나기 꽃이란 사실을 모른다면 실제 꽃 수선화의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몇 번을 읽으며 곱씹어 음미해 보아도 김동명의 시 <수선화>는 제목이 수선화일 뿐, 시적 대상이 꽃 수선화가 아니라 오히려 신화의 주인공 나르시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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