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진욱의 <칡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1:3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9)





 


칡꽃


- 이진욱


첨탑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무모한 줄 모르고

고압에 닿을 때까지

사력을 다해 기어오른다


사랑을 위한 등정이라면

말리고 싶다

저긴, 너무 위험한 길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몇 볼트의 벼락이 필요할까


뿌리에서 멀어져

더 아찔한,


칡꽃

 

 

인류 역사에 대부분의 위대한 일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탄성을 지르는 위대한 일들의 결과물은 그런 도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 위험하다고, 불가능하다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라고 주변에서 말렸을 터이지만 그런 불가능을 딛고 일어선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이진욱의 시 <칡꽃>을 읽다보면 문득 그런 무모한 도전이 떠오른다.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하더라도 기어오르는 것이 칡넝쿨의 본능이리라. 고압선이 흐르는 전신주일망정, 인간의 눈에는 위험한 일인지 모르지만 칡넝쿨에게는 기어오르기 안성맞춤일 수가 있다. 그러니 시 속 상황은 식물인 칡넝쿨의 생태와 그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인, 그리고 그 뒤에 얻는 깨달음이 담겨 있다.


고압선에 닿을 때까지 기어오르는 칡넝쿨을 보며 인간은 사랑을 위한 등정이라면 / 말리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저긴, 너무 위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칡넝쿨은 무작정 오르고 올라 고압선에 닿고 만다. 인간이라면 감전사 했을 것이 불문가지이지만, 칡넝쿨은 그곳에서 꽃을 피운다. 그러니 시인마저 꽃을 피우기 위해 몇 볼트의 벼락이 필요할까묻는다.

뿌리에서 멀어져 / 더 아찔한 // 칡꽃이라고 하지만 시인은 칡넝쿨이 뿌리에서 멀어졌기에, 아찔한 곳까지 올랐기에, 그러다가 고압선에 닿았기에 꽃을 피웠다고 인식한다. 아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리라. 아무도 하지 않은 일,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일, 무모하다거나 위험하다고 말리는 일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은 진실로 위대하지 않은가. 시인은 전신주 끝까지 올라 꽃을 피운 칡넝쿨을 보며, 어쩌면 인간의 결단과 용기가 얻어낸 위대함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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