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송재학의 <천남성이라는 풀>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13:3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79)







천남성이라는 풀

 

송재학

 

외할머니에게 남은 걱정이 있다면

사그랑이 몸뿐

꽃의 색깔이 잎과 같은 초록색인 천남성은

외할머니의 남은 것 중 몸에 가장 가깝지만

그 몸이 더 맑다

비 그친 하늘가에서 팔십 년을 보냈다면,

옆구리에 패일 찬샘처럼

잎이 변해 깔때기같이 길게 구부러진 초록 꽃잎은

이제 뻣뻣해지는 손이나 발이 생각해내는 젊은 살결처럼

저 피안에서나 다시 사용할 노잣돈처럼

숨은 노래를 다시 감추고 있다. 그 노래는

초록 꽃잎 안의 노란색 암술, 놀랍게도

꽃이름은 별의 이름, 알고 보면

잎이나 꽃이나 같은 초록인 것처럼

외할머니는 사십 년 전 내 어릴 적에도 할머니였다.

 

 

천남성(天南星)이란 별은 2월경에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서 잠깐 볼 수 있는 별이어서 흔히 남극성(南極星)이라 부른다.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기에 수성(壽星)이라고도 하는데, 이 별 이름이 붙여진 풀꽃, 천남성은 우리나라 각처 숲의 나무 밑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꽃이 초록색인데 실은 잎이 변해 꽃잎이 된 것이다. 그 모양이 특이하여 언뜻 보아서는 꽃 같지 않다.

토양이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자라는데, 키는 20~50, 잎은 길이가 10~20이고 5~10 갈래로 갈라지며 긴 타원형이고, 작은 잎은 양끝이 뾰족하고 톱니가 있다. 꽃은 녹색바탕에 흰 선이 있고 깔때기 모양으로 가운데 꽃차례 중의 하나인 곤봉과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며, 꽃잎 끝은 활처럼 말린다. 열매는 10~11월에 붉은색으로 포도송이처럼 달리는데 독성이 강하다.

송재학의 시 <천남성이라는 풀>에서 시인은 이 풀을 자신의 외할머니와 동일시한다. , ‘수명을 관장하는 별 천남성 같은 이름의 풀 80세의 외할머니로 연결되며 천남성이란 풀의 모습을 통해 외할머니를 그리고 있다.


시인의 외할머니에게 남은 걱정사그랑이 몸뿐이란다. 사그랑이라니, 그만큼 외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다 삭아서 못 쓰게 된 물건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시인은 외할머니의 몸을 서서히 천남성으로 환치시킨다. 외할머니는 팔십 년을 보냈으니 잎이 변해 깔때기같이 길게 구부러진천남성처럼 그 몸은 옆구리에 찬샘이 패일 것만 같다. 그런데 초록 꽃잎은 / 이제 뻣뻣해지는 손이나 발이외할머니가 생각해내는 젊은 살결처럼죽은 뒤에 저 피안에서나 다시 사용할 노잣돈처럼 / 숨은 노래를 다시 감추고 있다고 한다. 이 노래라는 것은 바로 초록 꽃잎 안의 노란색 암술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 꽃이름은 별의 이름천남성이다. ‘알고 보면 / 잎이나 꽃이나 같은 초록인 것처럼 / 외할머니는 사십 년 전 내 어릴 적에도 할머니였다고 한다. 맞다. 사십년 전 시인이 태어나며 외할머니가 된 분은 사십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외할머니이다. 이를 꽃과 잎이 같은 초록인 천남성으로 환치시켜 놓은 것이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외할머니인 것 - 그리고 꽃과 잎이 같은 초록색인 천남성은 결국 시인에게는 외할머니의 몸이 된다.


제주도 한라산 사려니 숲길에서 처음 천남성을 만났을 때 나는 그저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는 꽃 앞에 손전화 사진기만 들이댔는데 시인은 거기서 외할머니의 몸을 보고 있다. 나 같은 범부와 시인의 차이일 것이다. 송 시인의 시를 읽고 다시 천남성 사진을 보니 정말 웬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