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수현의 <통도사 배롱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8. 24. 16:5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05)






통도사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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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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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기제사 다음날

도라지꽃보다 더 흰 어머니와

영취산 통도사에 갔다

홍예반월교 지나 일주문 앞

배롱나무 한 그루 허리 뒤틀린 채 서 있다

천왕문 빠져나와 불이문 거쳐

금강계단 오르게 해 준다는

부처님 말씀을 굳게 믿었을까

아흔아홉 날에 또 하루,

대두 말가웃의 피와 열두 관의 살을

한 뒷박거리 마음에 실은

무심한 배롱나무

붉디붉게 산문을 물들인다

달구비 잦던 올 장마에도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끝내 젖은 아궁이에서

후림불을 지펴낸 저 고집불통!

팔남매 걱정 혼자 다 받쳐 들고 또 한

건너가실 어머니처럼

펄펄 끓는 화엄 한 솥 머리에 이고 있다

어머니 굽은 등으로

배롱꽃 그늘이 환하게 스며든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 야들아, 꽃상여인 것 같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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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는 중국이 원산이지만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단다. 전국 여러 곳에 이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니 그만큼 우리 역사와 함께한 나무라 할 수 있다. 여름날에 붉은색, 분홍색 혹은 흰색 꽃을 피우는데 꽃이 오래 핀다고 하여 나무백일홍혹은 백일홍나무라 불렀고, 이 이름이 발음대로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박수현의 시 <통도사 배롱나무>는 양산 통도사 경내에 있는 배롱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시 속에 통도사가 있는 산을 영취산이라 했는데, 본디 한자로는 靈鷲山으로 표기되지만 혹은 로 읽히기에 영축산혹은 영취산이라 달리 부른다. 이러한 혼동을 바로잡기 위해 양산시에서는 지명위원회를 구성, 200119영축총림 영축산 통도사라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시를 보자. 시 속 화자는 아버지 기제사 다음날어머니를 모시고 통도사에 간다. 그 어머니는 도라지꽃보다 더 흰분이다. 머리가 그렇게 하얀, 그만큼 늙으셨던 모양이다. 통도사 경내 홍예반월교 지나 일주문 앞배롱나무 한 그루허리 뒤틀린 채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하긴 통도사 경내에 그곳에만 배롱나무가 있는 것은 아니나, 화자의 눈에는 굵은 줄기가 뒤틀린 모습이 어쩌면 어머니의 허리를 보는 듯하여 유독 눈에 들었는지 모른다.


화자는 배롱나무가 되어 상념에 빠진다. 배롱나무는 천왕문 빠져나와 불이문 거쳐 / 금강계단 오르게 해 준다는 / 부처님 말씀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니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경내에 아흔아홉 날에 또 하루,’를 부처님 몸을 모시듯 대두 말가웃의 피와 열두 관의 살한 뒷박거리 마음을 싣고 서서 붉디붉게 산문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리라.

이어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을 찌른다. ‘달구비 잦던 올 장마에도 /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끝내 젖은 아궁이에서 / 후림불을 지펴낸 저 고집불통!’의 어머니이다. ‘팔남매 걱정 혼자 다 받쳐 들고살아오셨고 이제 연로하여 / 또 한 / 건너가실분이다. 화자가 생각하는 어머니처럼 배롱나무는 펄펄 끓는 화엄 한 솥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 화자의 눈에는, 아니 화자의 가슴속에는 어머니 굽은 등으로 / 배롱꽃 그늘이 환하게 스며드는 것처럼 보였다. , 배롱나무와 어머니를 동일시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 - 야들아, 꽃상여인 것 같데이라고. 화자는 배롱나무의 뒤틀린 허리와 붉디붉은 꽃을 보며 팔남매 키우시며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했고, 그 어머니처럼 배롱나무는 부처님 말씀을 따르려 펄펄 끓는 화엄 솥을 머리에 이고 견디는 것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에 비친 배롱나무는 화자와는 전혀 다르다. 어머니는 배롱나무 붉은 꽃을 상여에 달린 화려한 꽃장식으로 본다. , 자신이 죽어 타고 갈 꽃상여를 보는 것이리라.

배롱나무 붉은 꽃을 보고 꽃상여를 생각하는 어머니 - 연로하기도 하겠지만 남편을 위한 제를 올리려 찾은 통도사에서 남편 곁으로 갈 날을 그리며 이미 삶의 경계를 넘어선 분이지 않은가. 시를 읽으면 통도사 경내에서 보았다는 배롱나무가 한 폭의 정물화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거기에 더해 효심 지극한 화자의 마음은 물론 어쩌면 삶을 초탈한 듯한 어머니의 모습까지 아름답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