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고훈실의 <고려 엉겅퀴>

복사골이선생 2018. 8. 25. 02:0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07)







고려 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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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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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 나물 축제

네이버 검색란에 곤드레가 지천이다 연한 잎이 커서처럼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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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설 때마다 사람들이 쏟아진다

허기가 시장으로 몰려온다 잎의 시절에 걸터앉아 곤드레 나물을 비빈다 간장과 깨소금을 더해 입 위에 입들이 포개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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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성귀는 시간의 구석을 키운다

하루치의 잎사귀는 하루씩 꽃대를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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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곤드레 밭, 보랏빛 엉겅퀴 꽃이 사방에서 터진다

식물학자들은 비로소 고려 엉겅퀴라 한다 잎의 시절, 한 번도

짐작 못한 대전(帶電)이 꽃과 나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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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를 곤드레로 착란한 순간

온 몸이 감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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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계절을 싹둑

자른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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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오는

꽃으로 갚는다는 걸, 나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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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참살이라고 하는 웰빙시대를 맞아 너도나도 건강을 생각하며 음식 한 가지도 영양과 칼로리를 계산하여 찾아 먹고 있다. 궁핍한 시대의 주식이었던 꽁보리밥이 된장과 함께 인기를 누리고 있고, 거들떠도 보도 않던 개복숭아가 한방에서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자 따로 재배하는 농가까지 생겨났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음식까지 영양학적으로 접근하여 큰 수요가 생기게 되었다.

곤드레나물도 마찬가지이다. 곤드레나물은 구황식물(救荒植物), 즉 예부터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농작물 대신 먹을 수 있는 야생식물로,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5월경에 채취하여 어린 순은 데쳐서 나물, 장아찌, 튀김으로 먹거나 생으로 쌈을 싸서 먹었는데, 탄수화물, 단백질, 칼슘, 비타민A 등 영양소가 많아 성인병 예방에 좋고, 한방에서는 지혈, 소염, 이뇨작용, 지열, 해열, 소종 외에도 부인병에 치료약으로 이용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근래에 웰빙식으로 거듭났다. 강원도 정선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축제까지 열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이 곤드레나물고려엉겅퀴의 잎을 일컫는 말이란 사실을 많이들 모르고 있다. 고려엉겅퀴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특산종으로 전국에 분포하며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로 줄기에 달린 잎은 타원 모양 바소꼴 또는 달걀 모양이다. 어린잎을 채취하여 식용하는데 이것이 바로 곤드레나물이며, 710월에 지름 34cm의 붉은 자줏빛 관상화(管狀花)가 원줄기와 가지 끝에 한 송이씩 피는데 이것이 고려엉겅퀴 꽃이다.

고훈실의 시 <고려 엉겅퀴>에는 바로 이 꽃과 나물이 같은 것임을 몰랐던 화자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시 속 화자가 곤드레 나물 축제에 갔던 모양이다. 그때쯤이면 인터넷 검색창에는 곤드레가 지천일 것이다. 축제가 열리는 곳, ‘기차가 설 때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요, 축제장까지 오느라 허기가 졌으니 밥을 먹을 수 있는 시장으로 몰려오고, 곤드레나물 축제에 왔으니 특산물이라는 곤드레 나물을 비벼 먹는다. 그러면 간장과 깨소금을 더해 입 위에 입들이 포개지는 봄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곤드레나물이란 푸성귀는 시간의 구석을 키운다’ - 즉 봄을 채우는 것이다. 어떻게? 바로 하루치의 잎사귀는 하루씩 꽃대를 올려서 봄나물이 되어 봄을 보내는 것이다.

화자가 이번에는 늦가을 곤드레 밭에 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보랏빛 엉겅퀴 꽃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다. 꽃도 아름답지만 화자가 놀라는 것은 바로 곤드레나물로 알았던 것이 고려 엉겅퀴였다는 사실이다. 고려엉겅퀴 어린잎을 먹던 시절에는 한 번도 / 짐작 못한 대전(帶電)이 꽃과 나를 관통한단다. 즉 봄에 곤드레나물 어린 잎을 먹었는데 가을에 보니 그 나물이 바로 고려엉겅퀴 꽃잎이었다는 사실이 바로 전기에 감전이나 된 듯 전율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엉겅퀴를 곤드레로 착란한 순간 / 온 몸이 감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착란이라고 한다. 어지럽고 어수선하다는 것인데 바로 놀라움의 극치이다. 따라서 화자는 그동안 엉겅퀴란 꽃의 계절을 싹둑 / 자른 죄를 지었단다. 곤드레나물만 알았지 그것이 자라 꽃을 피우면 바로 고려 엉겅퀴꽃이라는 걸 알지 못했으니 고려엉겅퀴 꽃의 계절은 사계절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를 꽃의 계절을 싹둑 / 자른 죄라고 한다.

마지막이 참 재미있다. ‘어떤 과오는 / 꽃으로 갚는다는 걸, 나는 몰랐단다. 곤드레 나물밥을 먹으며 그 나물이 자라 가을엔 이렇게 아름다운 고려엉겅퀴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과오. 어떤 벌을 받았을까. 벌은커녕, 곤드레나물은 고려엉겅퀴라는 꽃으로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시인은 어느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맙소사! 강원도에 가면 장터마다 넘치던 그 흔한 나물이 보라색 꽃을 단 화초였다니……. 곤드레, 아니 고려 엉겅퀴는 내 무지와 무관심을 질타하듯 늦가을 저녁 한 방을 날렸다.’


모든 식물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꽃은 그 꽃이 핀 식물의 생식기가 된다. 잎을 먹는 채소도 마찬가지로 꽃을 피운다. 다만 우리는 그 채소의 꽃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어린잎을 먹는 채소만 생각했지 그 채소가 자라 꽃을 피울 때에는 그 채소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채소가 자라 꽃을 피울 때쯤에는 독이 올라 더 이상 잎을 먹지 못하니 우리도 먹지 못하는 채소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인의 말처럼 꽃의 계절을 싹둑 자른 죄를 짓고 있는 것이리라.


곤드레나물이 구황식물이었고, 그것이 바로 고려엉겅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시를 읽으며 그리고 시와 관련한 시인의 말을 들으며 혼자 빙긋이 웃고 말았다. ‘꽃의 계절을 싹둑 / 자른 죄를 곤드레나물이 아니 고려엉겅퀴가 꽃으로 갚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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