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고명자의 <북한산 도라지>

복사골이선생 2018. 8. 27. 17:1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08)







북한산 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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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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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냄새는 없는 거야

바락바락

왕소금으로 치대어도

왜 이념의 냄새는 나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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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제사 수십 년

먼 조상님 냄새

북한산 나물 한 접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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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징용 피해

함경도 두메산골 어디

젊어 한때 숨어 살았다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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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같은 아이 두엇 떨궈 놓았을지 몰라

사람이 도라지만 못하나

넘어왔다 넘어갔다 지금도 큰일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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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는 도라지

이산 저들에 그냥 백도라지

원산지를 증명하라고

뼛속까지 내보이라고

방방곡곡 시장의 도라지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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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철조망 너머

아득히

상처투성이 도라지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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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이중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엄연히 각각 독립된 국가이자 같은 유엔의 회원국이며, 한국전쟁 당시 적으로 싸웠지만, 분명 한 민족이요, 남은 북을 통일의 대상으로 북은 남을 해방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간 오랜 세월 보수세력은 이런 이중적 관계를 집권을 위한 선전도구로 이용하여 자유민주주의 혹은 진보적인 목소리에 빨갱이, 종북, 좌빨……이란 이름을 덧씌워 마치 용공분자인 양 매도했다. 게다가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생존하는 한 그런 목소리가 일정 부분 공감을 얻고 있다.

분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를 부르면서도 북한이란 말만 나와도 해방공간의 빨갱이를 연상하여 치를 떠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아직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갈등에 젖어 오로지 이분법으로만 자기 세력을 구축하려는 집단이 분명 있다. 게다가 한국전쟁 이후 세대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라 알게 모르게 그런 이념의 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고명자의 시 <북한산 도라지>를 보면 그런 이념의 갈등과 함께 통일에 대한 염원이 그대로 읽힌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전 세계의 농수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시대이다. 주로 중국산이 대부분이지만, 북한산도 중국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 시 속 화자는 명절 차례상(시에서는 제사상이라 했는데 명절에는 차례라 한다)에 올리려고 북한산 도라지한 접시를 준비하며 아버지 생각까지 하면서 남과 북의 갈등을 생각한다.


화자는 명절 제사 수십 년지낸 사람이다. 제사상에 오른 북한산 나물 한 접시에서는 먼 조상님 냄새가 난다. 그런데 그 냄새가 아프단다. 아버지 생각 때문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한때 일제 징용 피해 / 함경도 두메산골 어디로 가서 숨어 살았단다. 그곳에서 도라지꽃 같은 아이 두엇 떨궈 놓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아버지가 숨어 살 때 함경도에서 혈육을 만들었다면, 그들은 화자와는 형재자매가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만날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이 도라지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사람들이 휴전선을 넘어왔다 넘어갔다하게 되면 큰 일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라지는 어떤가. 북한산이지만 북한 하면 떠오르는 분단의 냄새는 전혀 없다. ‘바락바락 / 왕소금으로 치대어도북한산 도라지에서 이념의 냄새는 나지 않는.

왜 그럴까. 바로 도라지는 도라지이고 남과 북 이산 저들에 그냥 백도라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에 가면 원산지를 증명하라고고 한다. 같은 한반도, 우리 땅에서 난 도라지인데 왜 북한산, 남한산을 구분해야만 할까. 그러니 화자는 방방곡곡 시장의 도라지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가시철조망 너머 / 아득히분단의 이념 갈등에 상처투성이가 된 도라지꽃들에게 미안한 것이다.


휴전선이 가로 막혀 우리들은 자유롭게 오갈 수 없지만 새들을 남과 북을 넘나든다. 이제는 북한산 농수산물이 넘어와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식탁뿐인가. 제사상, 차례상에도 오른다. 분명 북한산 도라지에는 분단의 냄새이념의 냄새는 없다. 그런 도라지처럼 우리 통일된 국가에서 진정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갈 날이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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