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방희의 <냉이>

복사골이선생 2018. 8. 27. 17:17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09)







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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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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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1월이라고 달력은 말하는데

출하된 봄이라며 신문에 난 냉이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한 움큼 집어 올리는 냉이

냉이의 하얀 뿌리가 눈부시다

장한, 그래서 첼리스트 장한나 같은 냉이

장하고 꿋꿋하게 일어서서 봄을 켜는 냉이를 보면서도

언 땅에서 캐는 호미의 빛나는 날이나

엄동을 뚫고 올라온 푸른 기운

서릿발 의지는 외면하고 

매끈하게 벗은 하얀 몸만 보고

벗은 냉이의 통통한 하반신에

외설스런 생각만 입히다가 

냉이 캔 여자의 거칠어진 손이나

냉잇국 끓이는 젖은 손은 생각할 수 없나 싶어

울상인 냉이에 다시 눈 주는데

향긋한 냉이 냄새가 사진 밖으로 솔솔 배어난다

추워서 머플러를 두른 아주머니의 체취도 배어 나온다

보글보글 된장찌개 속에 든 냉이의 냄새

그 속에도 아주머니 몸 냄새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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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는 우리나라 전역 밭이나 밭두렁 혹은 논두렁과 들녘 초지는 물론 농촌 길가나 양지 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한해살이 풀이지만 해넘이살이(越年生)로 겨울을 경험하는가 하면, 여름을 중심으로 사는 것도 있다. 이름 냉이는 우리말에서 먹을 수 있는 약이나 채소를 가리키는 말로, 乃耳(내이) 또는 那耳(나이) 한자를 차자(借字)한 향명이다. 또한 한글로는 나, 나시, 나이, 남새, 나생이에서 유래한 아주 오래된 우리 고유의 이름이다. 냉이() 땅에서 새로 생겨난 생명체로 먹을 수 있는 반가운 나물을 의미하는 말이다.

박방희의 시 <냉이>를 읽다가 혼자 빙긋이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 속 냉이는 우리가 익히 보았고 국으로 혹은 나물로 먹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육감적이고도 원초적인 여인의 향기까지 맡을 수 있다. 냉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상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시 속 화자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 보자. 아직 들녘에 냉이가 나오기도 전인 1월이다. 추운 겨울인데 신문에 출하된 봄이란 제목으로 냉이가 소개되어 있다.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한 움큼 집어 올리는 냉이사진도 실렸다. 사진 속 냉이의 하얀 뿌리가 눈부시다고 한다. 이 추운 날씨에 냉이가 나왔으니 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하다는 생각은 언 땅에서꿋꿋하게 일어서서 봄을 켜는 냉이라서가 아니다. ‘엄동을 뚫고 올라온 푸른 기운이나 서릿발 의지때문도 아니다. 바로 사진 속 냉이의 뿌리가 매끈하게 벗은 하얀 몸으로 보이고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벗은 냉이의 통통한 하반신에 / 외설스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냉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냉이 캔 여자의 거칠어진 손이나 냉잇국 끓이는 젖은 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향긋한 냉이 냄새가 사진 밖으로 솔솔 배어나면서 신문의 사진 속에 머플러를 두른 아주머니의 체취도 배어 나온다는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냉이를 보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보글보글 된장찌개 속에 든 냉이의 냄새만이 아니라 그 속에도 아주머니 몸 냄새가 날 것이다고 한다.


추위를 이겨내고 솟은 냉이그리고 그 냉이를 캐서 다듬어 좌판을 열어 팔고 있는 아주머니둘 다 강한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찌 신문에 난 사진 - 냉이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 사진을 보며 냉이의 숨결과 아주머니의 숨결을 합쳐 냉이의 향기 속에 아주머니의 여성성이 깃든 체취까지 상상을 했을까. 시인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지만 너무 멀리 나간 것은 아닐까.

그런데 꼭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냉이 국이나 냉이가 들어간 된장찌개 속에는 분명 향긋한 냉이 냄새가 날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 냄새는 냉이를 캐는, 냉이를 다듬어 좌판을 펼치고 있는 아주머니의 풋풋한 살 냄새일지도 모른다. 이름 하여 원초적인 삶의 냄새라 할 것이다. 냉이와 함께 그 향기까지 국으로 찌개로 먹는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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