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문효치의 <으아리>

복사골이선생 2018. 8. 29. 09:0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11)








으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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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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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지 않다

이 숲에도 부처님은 계시고

아침 저녁 때맞춰 공양하며

가금씩 입 맞추어 웃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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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말이 필요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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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열어놓으면, 여기

미당이나 목월의 시 읽는 소리도 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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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았던 눈 떠 보면

손잡고 노니는 나방들도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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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람은 바쁜 사람끼리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끼리 놀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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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작은, 아주 작은

하얀 얼굴에 별빛이나 담아놓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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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리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낙엽 덩굴식물로 햇볕이 비교적 잘 들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자란다. 꽃은 6~8월에 피며, 가지 끝과 잎겨드랑이에 취산꽃차례로 달리며, 흰색이다. ‘으아리라는 이름의 유래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전하는 몇몇 기록에 어사리우알이란 이름이 나오고, ‘으아리는 맛이 맵고 아리기 때문에 잘못 이용할 경우 아리는 통증이 나타나는데 이런 점으로 인해 약재로 사용하던 중국 명칭 위령선우렁선이’, ‘어사리’, ‘우알이를 거쳐 으아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효치의 시 <으아리>으아리의 이러한 생태나 꽃 모양과는 관계없이 으아리꽃에 대한 시인의 주관적이고 특별한 느낌이 깊게 배어 있다. 시 속 화자의 말을 따라가 보자. 화자는 으아리이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으아리가 살고 있는 이 숲에도 부처님은 계시고 / 아침저녁 때맞춰 공양하며 / 가금씩 입 맞추어 웃기도한단다. 즉 부처님과 같이 우러러 볼 인물이 있고, 누구나 그렇듯이 아침저녁 때맞춰 밥을 먹으며 사랑하고 웃으며 놀기도 한다. , 일상적인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니 참으로 말이 필요없는 세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귀 열어놓으면, 여기 / 미당이나 목월의 시 읽는 소리도 들리는 세상이다. , 한 편에서는 문학이나 예술을 논한다. 다른 곳은 어떨까. ‘감았던 눈 떠 보면 / 손잡고 노니는 나방들도 보인다. 즉 문학이나 예술과는 아무 관계없이 그저 먹고 사는 일에 바쁜 장삼이사들도 있다. 그러니 세상살이를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다. ‘바쁜 사람은 바쁜 사람끼리 /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끼리 놀라 하고으아리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는 여기 / 작은, 아주 작은 / 하얀 얼굴에 별빛이나 담아놓고 살아 가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 개인적으로는, 시인 문효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직설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발표할 때쯤의 그가 어떤 마음고생을 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여러 문인들의 뜻을 따라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지만, 예전에 문단 권력의 주변부에서 겉돌았던 시인. 한때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을 지냈지만, 그것조차 문단 권력과는 거리가 먼 변두리 문학인이었다. 문단 정치의 변두리에서 문단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고 그저 나는 묵묵히 시를 쓰겠다던 시인. 그 당시 우리 들꽃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발표했다.


맞다. 문단 권력의 주변부에서 권력과는 어떤 끈도 갖질 못하고, 아니 갖고 싶은 생각도 없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하고 싶지도 않고 말도 필요 없는 세상이지 않은가. 문학도 있고 예술도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필부필부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겠는가.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살라 하고 나는 여기 아주 작은 / 하얀 얼굴에 별빛이나 담아놓고 살겠다는 시인이다.

문단 권력 선거철이면 늘 이름이 오르내리던 시인, 그러나 이름만 거론될 뿐, 언제나 변두리 문인에 머물렀던 사람, 그러니 세상사 그들에게 맡겨 놓고 본인은 그냥 시만 열심히 쓰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산행길에 문득 눈에 뜨인 으아리의 아름다움, 외로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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