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민영의 <봉숭아꽃>

복사골이선생 2018. 9. 5. 03:5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13)







봉숭아꽃

 

민영

 

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어린 시절, 여름날 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은 연례행사였다. 손톱에 진하게 물들라고 백반을 갈아 넣기도 했고 백반이 없으면 소금을 빻아 넣었다. 행여 이불에 묻을세라 이불 바깥으로 손을 뻗고 잠을 자야했고, 그렇게 물이 든 손톱은 밑뿌리가 다 자라 깎아 낼 때까지 손가락 끝을 빨갛게 장식했다. 누이들은 다섯 손가락 다 들였지만 나는 사내라고 새끼손가락에만 들였다. 언젠가 봉숭아물을 들이면 수술할 때 마취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임산부는 봉숭아물들이기를 기피한 적도 있지만, 도시화가 된 지금도 봉숭아물들이기는 어린 아이들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일종의 유희로 남아 있다.

민영의 시 <봉숭아꽃>을 읽으면 시인도 나처럼 새끼손가락에 물을 들였던 모양이다. 시에 따르면 시인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 내 새끼손가락에 / 봉숭아를 들여주셨다고 한다. 여자들만 물을 들이던 봉숭아꽃 - 시인도 남자였지만 시인의 어머니는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믿었기에 아들임에도 물을 들여 주셨을 것이다. 그것도 어려서만이 아니라 오십이 되기까지였다.




그럼 오십이 넘어서는? 아마 그 무렵 어머니가 세상을 뜨지 않았을까. 그러니 시인의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여 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 초롱불 밝힌 봉숭아를 보고는 이내 봉숭아물들이기를 생각했고 이어 어머니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가고 없는 어머니, 오십이 된 아들에게 봉숭아물을 들여 주셨던 어머니,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 지금은 용인 어느 공원묘지에 묻혀 있을 어머니이지만, 봉숭아꽃을 본 시인에게는 가슴 한 편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누구인가. 사내자식이 무슨 봉숭아물을? 남사스럽다고 누가 뭐라 할지라도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믿었기에 당신의 아들 잘되라고 봉숭아물을 들여 주셨고, 돌아가신 후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 마른 풀이 자라게 하는 사람, 그가 바로 어머니이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초롱불 밝힌듯 핀 봉숭아꽃을 보며 봉숭아물들이기를 생각했고 이어 자신에게 물들여 주셨던 어머니를 떠올리는 시인 - 효자임에 분명하다. 아니 이 시의 독자들까지 어머니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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