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병렬의 <박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9. 03:2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10)







박꽃

 

이병렬

 

50년 전, 옆집 순희가 우리집에 왔다. 나는 방문을 삐끔 열고 가만히 내다보고 있었다. 어머니하고만 이야기를 나누고 순희는 사립문을 나섰다. 그냥 가는가…… 순희가 힐끗 뒤돌아 볼 때 눈빛이 맞았다. 나는 웃었는데 순희는 수줍게 얼른 고개를 돌렸다. 뽀얀 얼굴이 더 뽀얘졌다. 유난히 얼굴이 하얗던 달덩이 우리 순희.

 

오늘 저녁,

옆집 울타리에 박꽃이 다시 피고

하얀 달이 떴다.

그리고 그 옛날 순희가 나를 쳐다봤다,

50년 전보다 더 수줍어했다.

 

문화원형백과에서는 박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박꽃은 이른 아침, 샘터에서 물을 길어온 여인네가 장독대에 단정히 꿇어앉아 상 위에 하얀 백자대접을 받쳐놓고 지성으로 기구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박꽃의 희디흰 빛깔은 고독 속에 홀로 간직한 청순미와 함께 무섬증이 들도록 섬짓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가련미를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꽃이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 데 반해 박꽃만은 그런 느낌과는 달리 눈물과 비애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에 햇빛이 비치는 낮에는 입을 다물고 해가 진 후 밤에만 피는 박꽃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머니나 누이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순백의 꽃 색깔도 그러려니와 흰모시 저고리를 떠올릴 만한 꽃잎을 보면 청순(淸純) 혹은 가련(可憐)을 넘어 슬픔까지 자아낸다. 게다가 꽃말도 기다림이다.

이병렬의 시 <박꽃>에서 시 속 화자는 5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옆집에 사는 순희가 심부름을 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방 안에 있던 화자는 목소리를 듣고 순희가 왔음을 알았을 것이고 방문을 삐끔 열고 내다보았단다. 순희는 화자의 어머니를 만나 용무를 마치고는 그냥 돌아간다. 그러나 순희 역시 화자가 내다보고 있음을 알았던 모양이다. 화자가 순희가 왔는데 저를 안보고 그냥 가는가……하며 아쉬워할 때 순희도 힐끗 뒤돌아보았고 이내 수줍게 얼른 고개를 돌렸단다. 그때 화자의 눈에 비친 순희의 뽀얀 얼굴이 더 뽀얘졌다고 한다.


그날 일 때문이지는 모르나 화자는 유난히 얼굴이 하얗던 달덩이 우리 순희로 기억하고 있다. 이때 순희는 곧 박꽃의 이미지로 화자의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50년 세월이 흘렀다. 환갑 진갑 넘었을 나이. 그러나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어린 시절 순희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저녁, / 옆집 울타리에 박꽃이 다시 피었단다. 박꽃은 박이 열리고도 계속 피어나니 박도 열려 있을 것이다. 그 박을 하얀 달이 떴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화자의 시선이 박꽃으로 옮겨가는 순간 마치 그 옛날 순희가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낀다. 게다가 ‘50년 전보다 더 수줍어하는 것처럼 느낀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박꽃이 화자를 쳐다봤을 리도 없고, 게다가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화자의 느낌, 상상일 뿐이다. 거기에는 달덩이 우리 순희가 연결되어 달처럼 둥근 박과 하얀 박꽃이 그런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긴 사랑에 나이가 뭔 상관인가. 50년 전 소녀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런데 그런 그리움을 나무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의 어린 시절 그리움은 어찌 보면 아름답지 않은가. 사랑은 그런 것이다. 박꽃이 시인의 순희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김질 하게 만들고 있다.

참, '달덩이 우리 순희'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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