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정끝별의 <속 좋은 떡갈나무>

복사골이선생 2018. 9. 7. 04:5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16)







속 좋은 떡갈나무

 

정끝별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벌레들이 산다

그 속에 벗은 몸을 숨기고 깃들인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버섯과 이끼들이 산다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딱따구리들이 산다

그 속에 부리를 갈고 곤충을 쪼아 먹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박쥐들이 산다

그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올빼미들이 산다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깐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오소리와 여우가 산다

그 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는다

 

속 빈 떡갈나무 한 그루의

속 빈 밥을 먹고

속 빈 노래를 듣고

속 빈 집에 들어 사는 모두 때문에

속 빈 채 큰 바람에도 떡 버티고

속 빈 채 큰 가뭄에도 썩 견디고

조금 처진 가지로 큰 눈들도 싹 털어내며

 

한세월 잘 썩어 내는

세상 모든 어미들 속

 

 

떡갈나무는 쌍떡잎식물 참나무목 참나무과의 낙엽교목이다. ‘떡갈이란 잎이 두껍기 때문에 생긴 이름인데 흔히 가랑잎나무 혹은 그 열매 이름을 빌어 도토리나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전역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데 목재보다는 땔감으로 썼던 나무이지만 큰 것은 높이가 20m에 이르기도 한다. 근래에는 웰빙 시대를 맞아 도토리를 수확하려 많이들 찾고 있는데 특히 도토리는 한국 고유의 식품인 묵으로 만들어 예부터 구황식(救荒食)이나 별식(別食)으로 먹어왔다. 나무껍질은 타닌 함량이 많아 타닌 원료로 쓰이며, 잎은 떡을 싸는 데 쓰여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정끝별의 시 <속 좋은 떡갈나무>는 이 세상 어머니들을 떡갈나무로 환치시켜 놓고 있다. 시인이 본 떡갈나무는 수령이 오래 되어 굵은 것은 물론이요 줄기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구멍을 시인은 속 빈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정말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속이 비어 있는 떡갈나무의 그 빈 공간에는 벌레, 버섯과 이끼, 딱따구리, 박쥐, 올빼미, 오소리와 여우가 산다고 한다. 오소리와 여우까지 그 속에 굴을 파고 집을지을 수 있으니 떡갈나무의 크기와 빈 공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속 빈떡갈나무에 사는 것들은 거기에서 밥을 먹고, 노래를 들으며 그 속에 살고 있기에 큰 바람과 큰 가뭄에도 견딜 수 있고, ‘조금 처진 가지로 큰 눈들도 싹 털어낼 수 있다.

이런 것을 근거로 시인은 결론을 내린다. ‘한세월 잘 썩어 내는 / 세상 모든 어미들 속이란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머니의 품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어머니 품에서 밥을 먹고, 노래를 들으며 그 품에 있기에 큰 바람과 큰 가뭄도 견딜 수 있고 큰 눈도 털어낼 수 있는 것이다.


수령이 오래 된 떡갈나무, 그 줄기에 파인 구멍을 속 빈떡갈나무로 파악하고 이를 이 세상 어미들 속으로 인식하는 시인, 그 상상력도 그러려니와 시인은 이를 노래로 부르고 있다. 1연의 첫 단어들은 , 2연에서는 이 반복된다. 이런 두음의 반복을 통해 시를 읽다보면 노래가 된다. 바로 두운(頭韻)의 효과이다.

떡갈나무가 제 스스로 속을 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여유이건 줄기에 생긴 커다란 구멍 속에는 여러 생물이 살 수 있다. 이를 시인은 떡갈나무가 제 속을 비워 수많은 생명들을 키워내는 것을 파악한다. 그 연장선에서 어머니의 품을 생각하고 그 품에서 큰 자식들을 떡갈나무 구멍 속에서 자란 생명들로 환치해 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속 좋은이란 관형어이다. 속이 좋다니? 맞다. 속이 좋은 어미는 속을 비운 어미일 것이다.


속을 비워 자식들을 키워내는 이 세상 어머니들 - 그 사랑은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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