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용래의 <구절초>

복사골이선생 2018. 12. 8. 14:0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73)






구절초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구절초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 햇살이 잘 비치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가 곧게 서고 잎은 둥근 타원형 꼴로 어긋나며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잘게 갈라져 있다. 포기에는 대부분 잔털이 있는데 9~11월에 흰색 꽃이 가지 끝에 하나씩 피며 향기가 짙어 관상용으로 화단에 많이 심기도 한다. 꽃을 따 약용으로 쓰는데 음력 99일 중양절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 하여, 줄기가 아홉 마디가 된다는 뜻의 구()와 중양절의 절()을 따서 구절초라고 한단다.

박용래의 시 <구절초>에서는 이 꽃에서 누이의 모습을 본다. 첫 행부터 누이야부르며 이어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라 또 부른다. 이를 통해 가을구절초그리고 사랑이 모두 누이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누이 - 가을 - 구절초 - 사랑은 어떤 면에서는 하나이다. 누이가 가을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가을에 죽었는지는 모른다. 구절초가 가을에 피는 것은 분명한데 이 또한 누이가 좋아했던 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랑은 바로 누이와 관련된 사랑일 것이리라.


이뿐만이 아니다. 시 속 화자의 고향인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역시 구절초이다. 화자에게는 구절초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이 있고 여학생들이 마아가렛이라 불렀던 기억도 있다. 요즘도 구절초를 서양의 꽃인 마가렛이나 샤스타데이지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 속 여학생들도 그랬던 모양이다. 하기는 꽃 모양이 워낙 흡사하니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다만 화자의 눈에는 구절초 꽃모양이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것처럼 보였단다.


여기서 화자는 구절초를 단추 구멍에 달아도좋고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은 꽃 - 사랑이라고 한다. 또한 여우가 우는 추분(秋分)’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꽃이라 했다. 마지막 행에 수미상관으로 다시 한 번 누이를 부르며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라 탄식한다. 다섯 번이나 사랑아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화자의 누이를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은 어쩌면 친 누이가 아니라 연애 감정을 가졌던 어떤 처자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시에서 누이는 시인의 죽은 누이이다. 혹자는 이 시 속 누이란 남성에겐 어머니에게서 받은 X염색체와 가장 유사한 유전자를 지닌 여성으로 자신의 정신적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니마(anima)가 투영된 연인이며 그리움과 애착의 대상이라 해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가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꼭 그런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 독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누이면 족하다. 다만, 그 누이는 가을 그리고 구절초와 연결된 사랑이란 것은 확실하다.

사랑하는 누이를 어려서 잃었다는 시인은 화자의 목소리를 빌어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사랑을 부르며 그리운 누이를 구절초로 환치시켜놓고 있다. 그리운 누이는 여우가 운다는 추분(秋分)에 그것도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구절초로 피어 있다. 그러니 다섯 번이나 사랑아라 부른다. 사랑이라 했지만 바로 구절초요 이는 곧 누이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들국화는 식물의 종 이름이 아니라고 한다. 들에 피는 국화과 꽃을 뭉뚱그려 그냥 들국화라 부른다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쑥부쟁이, 개미취, 벌개미취 그리고 구절초이다. 그 중 구절초 색이 유난히 하얗다. 시를 읽다보면 시인이 그리워한 누이를 본 적은 없지만 구절초의 모습으로 눈앞에 그려진다. 티 없이 맑은, 하얀 꽃 잎, 겉옷 단추 구멍에 달아도 좋고 아니면 머리에 꽂아도 좋을 꽃 구절초. 시인에게 구절초는 누이이자 고향 부소산이며 여름모자 차양이 숨어 있는 꽃으로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이다.

안도현 시인이 그랬다. ‘구절초 가는 허리를 오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는 사내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구절초를 만났을 때 한 송이쯤 머리에 꽂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 역시 아가씨가 아니다고도 했다. 안 시인이 말이 그래서가 아니라 박용래의 <구절초>를 읽고 나면 정말이지 구절초가 사랑스럽고 그리운 누이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마디마다 나부끼는 사랑이 나중에는 눈물 비친 사랑이란다.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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