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제영의 <선인장>

복사골이선생 2018. 12. 9. 01:3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74)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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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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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한 때 넓은 잎 무성한 활엽식물이었다 물오른 줄기로 잎새마다 형형색색 꽃 피었던 활엽식물이었다 고비가 몽골고원에만 있는 사막은 아니어서 아내에게는 남편이 고비고 자식들이 고비여서 더 많은 눈물이 필요했던 아내는 잎을 하나씩 지우며 고비를 넘겼다 여자를 내준 마디마디 가시로 아물며 고비를 넘었다 아니다 여전히 고비를 건너는 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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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仙人掌)은 쌍떡잎식물 선인장목 선인장과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으로 대개 잎이 없는 다육질의 큰 줄기가 특징인 현화식물(顯花植物, 생식기관으로 꽃이 있으며 밑씨가 씨방 안에 들어있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자라는 선인장은 열대산으로 높이 2m에 달하고 편평한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제주도에 많이 자라는데 길이 13cm의 가시가 25개씩 돋고 바로 옆에 털이 있으나 오래된 것은 나무처럼 굵어진다. 선인장류의 식물은 관상용으로 개량하여 수백 종에 이른다.

박제영의 시 <선인장>에서는 잎이 무성한 활엽식물에서 가시만 가득한 다육식물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아내를 선인장으로 환치시켜 놓는다. 첫 행에서 시인은 아내도 한 때 넓은 잎 무성한 활엽식물이었다고 밝힌다. 그것도 물오른 줄기로 잎새마다 형형색색 꽃 피었던 활엽식물이었단다. 처녀시절 그리고 신혼 초에 얼마나 아름다운 여자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결혼 후 시인을 남편으로 맞아 아들딸 낳으며 여자는 변한다.


여기서 시인은 여자였던 아내가 변하는 과정의 중요한 대목을 고비라 하며, 이를 고비가 몽골고원에만 있는 사막은 아니어서란 언어유희로 풀어낸다. 즉 중국 내몽골 자치구와 몽골에 걸쳐 있는 고비사막(Gobi 沙漠)’을 제시하며 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나 대목 또는 막다른 절정을 뜻하는 고비를 강조한다. 바로 아름다운 여인이 여성성을 버리고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고비를 풀어낸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아내에게는 남편이 고비고 자식들이 고비였단다. 남편을 위한 일 그리고 자식을 위한 일에 아내는 여자임을 버리고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 해낸다. 그런 삶 속에 더 많은 눈물이 필요했던 아내는 화려했던 잎을 하나씩 지우며 고비를 넘겼단다. 시인은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성을 간직했던 여자를 내준 마디마디 가시로 아물며 고비를 넘었다고 여긴다. 남편을 위한 일 그리고 자식을 위한 일을 할 때에 우리네 여성들은 여성임을 포기한다. 아니 포기가 아니라 여성성을 뛰어 넘어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더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잎새마다 형형색색 꽃 피었던 활엽식물의 잎은 가시로 변한다.

그런데 마지막 말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아니다 여전히 고비를 건너는 중이겠다는 말 - 결혼 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여성성까지 버리며 헌신해 온 아내, 남편이 속을 썩일 때 그리고 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그런 고비마다 아내는 잎을 버리고 가시를 키웠다. 이제 가시만 남은 선인장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일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다. 결국 시인과 자식들은 아직도 아내 그리고 어머니에게 신경 써야 할 존재들이란 말이다. 아내의 헌신,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게 끝이 없다.

그러니 시 <선인장>은 시인이 아내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풀어 말하면 아내 자랑이다. 그런데 그 자랑이 유치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아내를 둔 시인이 부럽다. 단순히 내게 그런 아내가 없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잎을 버리고 가시를 키우며 헌신해 온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이 절절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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