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신현정의 <사루비아>

복사골이선생 2018. 12. 10. 04:0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76)






사루비아

 

신현정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사루비아는 브라질 원산으로 꿀풀과 배암차즈기속의 여러해살이 풀이었지만 원예종으로 세계 각국에 퍼져 생육환경에 따라 여러 품종이 나왔는데 사르비아혹은 셀비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겉모양이 깨와 유사하고 꽃이 아름다워 깨꽃이라 부르는데 우리의 생육환경에서는 한해살이풀이 되었다. 높이 60~90cm까지 자라는데 5~10월에 붉은색의 꽃이 핀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하는데 속꽃을 따서 빨아보면 단맛이 난다 하여 꿀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현정의 시 <사루비아>에서 화자는 이 꽃의 붉은 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다가 화자는 이 꽃의 꽃말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즉 꽃말 - 꽃이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에는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오로지 붉은색에서 연상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렇기에 화자인 나는 / 사루비아에게 /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고 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화자는 수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게다가 어쩌면 죽음의 그림자까지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혹시 모를, 수술 중에 피가 모자랄 경우 사루비아가 수혈을 해주기를 부탁한다. 화자의 눈에는 사루비아 붉은 색이 피가 넘쳐흐르는 색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피를 나누어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조심스럽게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고 한다.

화자는 그 때가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고 하며 다시 한 번 부탁을 한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라고. 이 시가 시인의 유고시집에 실려 있고, 시인이 세상을 뜬 것이 200910월이니 병상에서나마 살아 있던 2009년 초가을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 그런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병상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사루비아의 붉은꽃을 보며 수혈을 부탁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자신의 관점에서 본다. 나는 사루비아를 볼 때마다 달콤한 꿀물을 생각한다. 꽃이 붉은색이라거나 깻잎을 닮았다는 줄기나 잎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사루비아 - 깨꽃을 보면 꽃을 따 달콤한 꿀물을 빨아먹던 것만 생각난다. 그런데 사루비아의 붉은 꽃 - 시인은 그 때 그 붉은 색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수혈을 생각했으리라. 그러니 그렇게 간곡한 부탁을 하지 않았겠는가. 지극히 단순한 구조, 게다가 심오한 뜻이 담긴 것도 아니기에 이 시를 문예미학적으로 따지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시를 읽으면 살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바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용히 건넸다고 했지만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는 살고자하는 시인의 마지막 절규였으리라.


시인이시여, 그 나라는 평안하신가. 그 나라에서는 사루비아를 보면 수혈을 생각 말고 꽃의 아름다움을 만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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