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제영의 <능소화>

복사골이선생 2018. 12. 12. 08:4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1)




능소화

 

박제영

 

요선동 속초식당 가는 골목길 고택 담장 위로 핀 꽃들, 능소화란다 절세의 미인 소화가 돌아오지 않는 왕을 기다리다가 그예 꽃이 되었단다 천년을 기다리는 것이니 그 속에 독을 품었으니 함부로 건드리지 말란다 혹여 몰라볼까 꽃핀 그대로 떨어지는 것이니 참으로 독한 꽃이란다 담장 아래 꽃 미라들, 천 년 전 장안에 은밀히 돌았던 어떤 염문이려니, 꽃핀 채로 투신하는 저 붉은 몸들, 사랑이란 무릇 저리도 치명적인 것이다

 

내 사랑은 아직 이르지 못했다 順伊錦紅이도 순하고 명랑한 남자 만나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 아내는 내 먼저 가도 따라 죽진 않을 거란다 끝까지 잘 살 거란다 다행이다 이르지 못한 사랑이라서 참 다행이다

 

 

능소화는 능소화과의 낙엽성 덩굴식물로 담쟁이처럼 벽에 붙어 올라가며 자라기에 큰 것은 그 높이가 10m에 달하기도 한다. ‘능소(凌霄)’하늘을 능멸하다란 뜻으로, 하늘에 닿을 듯 뻗어간다 하여 하늘을 이기는 꽃이라 한다.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금등화(金藤花)’라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 하여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물론 지금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꽃이다. 통꽃의 구조이기에 꽃이 질 때 송이채 떨어진다.


박제영의 시 <능소화>에서는 이 꽃에 얽힌 전설 하나를 소개하며 꽃의 특질과 함께 치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시에서 소개하는 전설부터 보자. 절세미인 소화가 돌아오지 않는 왕을 천년이나 기다리다가 끝내는 꽃이 되었는데 그 꽃이 능소화란다. 천년이나 기다렸으니 꽃 속에 독을 품었단다. 그래서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왕이 자신을 몰라볼까 염려하여 죽을 때에도 꽃핀 그대로 떨어지는 것이니 참으로 독한 꽃이란다.

시 속 화자는 요선동 속초식당 가는 골목길 고택 담장 위에 피어 있는 이 꽃을 본다. 피어 있는 꽃만이 아니라 떨어진 꽃도 보았는데, ‘담장 아래 꽃 미라들을 보며 화자는 천 년 전 장안에 은밀히 돌았던 어떤 염문이려니생각한다. 그리고는 꽃핀 채로 투신하는 저 붉은 몸들을 보며 사랑이란 무릇 저리도 치명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생각한다. 예전에 사귀었던 順伊錦紅이도 순하고 명랑한 남자 만나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니 자신의 사랑은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의 사랑이란 천 년이나 기다리며 독을 품게 되는 능소화처럼 치명적인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런 생각하며 화자는 아내에게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던 모양이다. 어쩌면 같이 죽는다거나 평생 수절하고 혼자 살겠다는 말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내는 화자가 먼저 가도 따라 죽진 않을 거라 답한다. 게다가 끝까지 잘 살 거라고 한다. 아내의 그런 대답에 화자는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행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르지 못한 사랑이기 때문이란다.

이르지 못한 사랑 - 자신의 사랑은 천 년이나 기다리다 결국에는 독을 품고 죽어 피어난 능소화, 즉 치명적인 사랑이 아니란 뜻이리라. 이는 아내뿐만이 아니다. 윤동주의 시만이 아니라 시나 문학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순이와 이상의 소설에 나오는 금홍- 바로 順伊錦紅이도화자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 만나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화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면서도 화자는 소화의 치명적인 사랑을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역으로 천년이나 왕을 기다리다 능소화로 피어난 소화의 사랑은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소화의 사랑 - ‘치명적인 것을 부러워하는 걸까 아니면 부질없다고 생각할까. 만일 사랑이 능소화처럼 독하고 치명적이라면, 화자는 자신의 사랑이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랑이라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라 했다. 이를 이르지 못한 사랑이라 하는데, 자신이 없어도 잘 살겠다는 아내의 말에 다행이라는 것은 자신이 없어도 아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아닐까. 그렇기에 오히려 소화의 사랑 같은 독한 사랑보다는 이르지 못한 사랑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어찌 판단을 하건, 그 판단만으로도 이 시를 이해한 것이 된다. 아무튼 사랑 참 복잡하다. 하긴 사랑 그놈이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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