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손택수의 <감자꽃을 따다>

복사골이선생 2018. 12. 13. 08:4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2)




감자꽃을 따다

 

손택수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 있던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 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낸다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없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다는 독종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

 

 

트레킹을 하다가 감자꽃을 일러주면 농촌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놀란다. 감자도 꽃이 피냐고 묻기까지 한다. 사실 감자만이 아니라 모든 식물은 꽃을 피운다. 꽃은 바로 그 식물의 생식기로 꽃을 피워야 수정을 통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당연히 감자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권태응의 동시에 나오듯이 파보나마나 자주 꽃 핀 건 / 자주 감자이고 하얀 꽃 핀 건 / 하얀 감자이다.

다만 농사꾼들에게 감자꽃과 그렇게 해서 맺은 열매는 전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덩이뿌리인 하지감자를 겨울 동안 보관했다가 이듬해 봄에 땅에 심기 때문이다. 감자를 심는 것은 꽃이나 열매를 보려는 게 아니라 뿌리에 달릴 새로운 감자를 얻기 위한 것이니 그렇다. 그러므로 농사꾼은 감자꽃이 피면 땅 속 감자알의 생육에 방해가 될 꽃을 다 따버린다. 그렇게 해야 꽃으로 가는 영양분이 감자알로 가 알을 더 굵게 하기 때문이다.

손택수의 시 <감자꽃을 따다>에서는 감자꽃을 따는 행위를 우리네 인생의 화려한 욕망을 끊어내는 것으로 파악한다. 시 속에서 화자가 주말농장에 갔던 모양이다. 거기서 감자꽃을 따고 있는 철문 형에게 꽃 이쁜데 왜 따우라 물었다. 그 형은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라 일러주며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다고 설명까지 해준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화자도 감자꽃을 땄단다.

여기서 화자는 감자꽃을 따는 행위를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내는 것으로 인식한다. ‘꽃 핀 마음이 무엇일까. 화자는 어머니, 누이 그리고 형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부여한다.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 누이는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없고감자꽃을 따고 있는 형은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 술도 잘 마시질 않았다. ‘담배를 끊을 만큼 잔인한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마라는 임어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찌 생각하면 형은 담배를 끊을 만큼 독종이리라.

일찍 자식들을 낳은 어머니는 당신의 청춘을 다 바쳐 자식들을 키워냈다. 화자에게 조카애를 낳은 누이 역시 자신의 외모를 꾸미기보다 그 돈을 아껴 조카애를 키워냈다. 딸을 위해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인 형도 마찬가지이다. 자식들을 위한 마음에 셋은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포기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꽃 핀 마음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개인적인 꽃 핀 마음을 끊어내야 자식들에게 돌아갈 것이 더 많으리라. 마찬가지로 감자꽃을 따줘야 영양분이 감자알에게 가지 않겠는가. ‘꽃 핀 마음’ - 감자꽃은 보기에 화려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자식들의 미래, 바로 감자알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꽃 핀 마음을 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니 화자 역시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겉으로 드러나 화려한 꽃은 잠시 피었다가 진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땅 속 감자알은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농부에게 돌아갈 결실이다. 그 결실을 위해 잠시 화려하게 핀 감자꽃을 아예 따버리는 행위 - 바로 우리네 부모들의 자식 사랑이 아니겠는가. 나아가 본질을 위해 비본질을 없애는 것, 바로 삶의 지혜이며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덕목이 되지 않을까.


주말농장 감자 밭고랑에서 있었던 자그마한 일 - 감자꽃을 따는 행위를 통해 삶의 교훈을 전하는 시인. 화자의 어머니나 누이 그리고 형이 보여주는 삶의 지혜이자 실천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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