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안준철의 <개망초 2>

복사골이선생 2018. 12. 13. 15:2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4)




개망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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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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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기운에 이틀째 목이 잠겨 지내는데

횡단보도를 막 건너온 나에게

한 남자가 차를 세우더니 길을 묻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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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급한 마음에 목구멍이 터져

간신히 길 일러주고 돌아서는데

길가에 개망초 두어 송이 피어 있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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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지

잠긴 목으로는 구성진 노래 부를 수 없어도

더듬더듬 누군가의 길이 되어줄 수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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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지

풀꽃 두어 송이면 충분하지

꽃필 날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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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사

사는 것이 하나도 서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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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를 볼 때마다 신경질이 난다. 왜 이름을 개망초라 했을까. 사실 이름 앞에 가 붙으면 정말 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개가 가짜’, ‘사이비’, ‘비슷한등의 의미를 붙인 것이 된다. 따라서 개망초망초와 비슷한, ‘망초의 가짜, ‘망초의 사이비란 뜻이다. 그렇다면 망초는 어떤 꽃이며 왜 망초라 할까.

사실 망초는 우리나라 꽃이 아니다. 구한말 서구로부터 유리그릇이 수입되면서 그릇이 깨지지 않게 사이사이에 풀 묶음을 넣었는데 그때 따라 들어와 퍼진 것이다. 북미(캐나다)가 원산이라지만 현재 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꽃이 들어와 퍼지면서 나라가 망했다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풀망초(亡草)’라 불렀단다. ‘망초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깨지지 않은 유리그릇을 받아보았으면서도 그런 것은 생각 않고 망국의 결과를 붙여 꽃 이름으로 하였으니 말이다.

그 후에 들어온 것이 바로 개망초이다. 이 꽃을 볼 때마다 참 예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외한인 경우 뭔 국화가 늦봄, 초여름에 피냐고 묻기도 하는데 국화와는 전혀 다른 꽃이다. 미국이 원산인 이 꽃 역시 유리그릇을 수입하며 함께 들어온 것인데, 먼저 들어온 망초와 그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앞에 가 붙어 개망초가 되었다. ‘망초란 이름도 억울한데 그것도 가짜’, ‘사이비망초가 되었으니 망초보다 더 예쁜 꽃이 망초보다 못한 꽃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이 꽃 이름은 원래 넓은잎잔풀이었단다누군가가 망초하고 비슷한 놈이네~~!’라 하며 개망초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만 굳어져 현재 식물도감에도 버젓이 개망초라 되어 있다. 물론 영어로는 Erigeron인데 이는 그리스어 eri(빠르다)geron(노인)의 합성어로 회백색의 연모로 덮인 꽃자루에서 빨리 꽃을 피우는 식물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개망초이며 늦봄부터 가을까지 들녘 아니 주택가 공터에서도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꽃이다.


안준철의 시 <개망초 2>에서는 이 꽃을 행복을 주는 꽃으로 풀어낸다. 시의 내용이래야 아주 단순하다. 시 속 화자는 감기 때문에 목이 잠겨 있다. 그런데 화자에게 한 남자가 차를 세우더니 길을물었단다. 알고 있는 길이니 목이 아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음에도 간신히 길 일러주고 돌아서는데마침 길가에 개망초 두어 송이 피어 있었단다. 여기서 화자는 생각한다. ‘잠긴 목으로는 구성진 노래 부를 수 없어도 / 더듬더듬 누군가의 길이 되어줄 수는 있다고.

이와 관련하여 개망초 같은 풀꽃 두어 송이면 충분하지 / 꽃필 날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에게는이라 한다. ‘그래 그렇지란 말까지 넣어 강조한다. 맞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러준 말이 상대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은 그냥 어깨 한 번 쳐 주었는데 그 학생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응원이 된다. 목이 아픔에도 일러준 길, 길을 물은 사람에게는 그보다 좋은 도움이 없다. 꽃을 기다린 사람에게 두어 송이 피어 있는 개망초 - 아무리 흔한 꽃이라도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아주 사소한 일로 남을 돕고 아주 흔한 꽃에 위안을 받는 화자 - 당연히 요즘사 / 사는 것이 하나도 서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행복할 것이리라. 하긴 어느 글에서 시인은 이 시와 관련하여 내 행복이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낯선 누군가의 행복과 풀뿌리처럼 잇닿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뿐이겠는가. ‘개망초가 시인에게 그런 행복을 전해주지 않았는가. 그래서 제목이 감기길안내가 아니라 개망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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