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복효근의 <엉겅퀴의 노래>

복사골이선생 2018. 12. 14. 03:0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5)



엉겅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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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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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거든 엉겅퀴이리라

꽃 핀 내 가슴 들여다보라

수없이 밟히고 베인 자리마다

돋은 가시를 보리라

하나의 꽃이 사랑이기까지

하나의 사랑이 꽃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잃고 또

떠나야 하는지

이제는

들꽃이거든 가시 돋힌 엉겅퀴이리라

사랑이거든 가시 돋힌 들꽃이리라

척박한 땅 깊이 뿌리 뻗으며

함부로 꺾으려드는 손길에

선연한 핏멍울을 보여주리라

그렇지 않고 어찌 사랑한다 할 수 있으리

그리고

보랏빛 꽃을 보여주리라

사랑을 보여주리라 마침내는

꽃도 잎도 져버린 겨울날

누군가 또 잃고 떠나

앓는 가슴 있거든

그의 끓는 약탕관에 스몄다가

그 가슴 속 보랏빛 꽃으로 맺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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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 북동부 지역의 산과 들에 자란다. 가시가 많아 가시나물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특별히 고려엉겅퀴의 잎은 곤드레나물이라 한다.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 50100cm 정도이며 전체에 흰 털과 더불어 거미줄 같은 털이 있다. 꽃은 68월에 피고 자주색에서 적색이며 잎은 좁고 녹색이다. 뿌리는 위를 튼튼히 하며 해독 작용은 물론 강장 증진에 도움이 되어 약용으로 많이 쓴다. 꽃이 열매를 맺을 때, 하얗게 엉킨 털이 서로 쥐어짜는 것으로 보여 엉겅퀴라 했다고도 하고 피를 엉겨 지혈을 한다 하여 엉겅퀴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복효근의 시 <엉겅퀴의 노래>는 이 꽃을 사랑으로 풀어낸다. 혹자는 가장 흔한 들풀로 민들레, 질경이와 함께 엉겅퀴를 꼽을 정도로 흔한데 시 속 화자도 들꽃이거든 엉겅퀴이리라며 이 꽃을 제시한다. 여기서 잠시 엉겅퀴가 화자가 되어 꽃 핀 내 가슴 들여다보라는데, 바로 수없이 밟히고 베인 자리마다 / 돋은 가시를 보리라고 한다. 즉 엉겅퀴 꽃의 가슴 속에는 밟히고 베인 자리마다 가시가 돋다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그만큼 엉겅퀴에는 가시가 많다. 어쩌면 흔하다 보니 꽃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장치를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화자는 엉겅퀴의 가시를 근거로 하나의 꽃이 사랑이기까지 / 하나의 사랑이 꽃이기까지 / 우리는 얼마나 잃고 또 / 떠나야 하는지라 한다. 꽃이 사랑이 되기까지 그리고 사랑이 꽃이 되어 필 때까지 수많은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이를 통해 화자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제는 / 들꽃이거든 가시 돋힌 엉겅퀴이리라 / 사랑이거든 가시 돋힌 들꽃이리라고 한다. 그냥 엉겅퀴가 아니라 가시 돋힌 엉겅퀴가 들꽃의 대표이며 이것이 곧 사랑이란 말이다.


다시 엉겅퀴가 화자가 되어 말을 잇는다. 그 가시들은 엉겅퀴가 척박한 땅 깊이 뿌리 뻗으며 / 함부로 꺾으려드는 손길에꽃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연한 핏멍울을 보여준단다. 꽃을 꺾으려던 사람이 가시에 찔려 피가 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선연한 핏멍울같은 꽃 색깔을 보여줌으로써 멈칫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그리고 / 보랏빛 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연한 핏멍울보랏빛 꽃을 보여주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엉겅퀴 꽃은 사랑을 보여주리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 후에 더 큰 사랑을 이야기한다.

바로 마침내는 / 꽃도 잎도 져버린 겨울날엉겅퀴는 뿌리가 뽑혀 누군가 또 잃고 떠나 / 앓는 가슴 있거든 / 그의 끓는 약탕관에 스몄다가 / 그 가슴 속 보랏빛 꽃으로 맺히리라는 것이다. 바로 약용으로 쓰이는 엉겅퀴 뿌리가 보여주는 사랑이다. 시인은 엉겅퀴의 효능을 잘 알고 있다. 여자들의 경우 갑작스런 하혈에 엉겅퀴 뿌리를 즙을 내어 마시면 효과가 있고 잎은 말려 지혈제로 쓰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뿌리를 술에 담가두었다 마시면 식욕을 되찾을 수 있고 위를 튼튼히 함은 물론 해독 작용 그리고 강장제로도 아주 좋단다. 마지막 행 보랏빛 꽃으로 맺히리라는 바로 엉겅퀴의 이러한 효능을 사랑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엉겅퀴꽃을 보며 사랑을 생각했을꼬. 가시투성이 엉겅퀴꽃을 보며 어찌 하나의 꽃이 사랑이기까지 / 하나의 사랑이 꽃이기까지 / 우리는 얼마나 잃고 또 / 떠나야 하는지를 생각했을꼬. 흔하디 흔한 엉겅퀴꽃 - 화자가 번갈아가며 그려내는 엉겅퀴 꽃은 시인의 예리한 시각과 통찰력을 거치며 이렇게 아름다운 희생적인 사랑으로 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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