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도종환의 <라일락꽃>

복사골이선생 2018. 12. 18. 10:02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6)




라일락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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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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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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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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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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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한

순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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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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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正體性)’이란 단어는 사회학이나 정신분석 혹은 문학비평 등 각 분야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일컫는다. 쉽게 풀어 말하면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특질 즉 본질(本質)로 주체(主體)나 아이덴티티(identity) 혹은 자아(自我)라고도 한다.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흔히 죽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정체성이야말로 존재의 가치이자 이유이기 때문이다.

도종환의 시 <라일락꽃>에서는 라일락꽃의 사례를 들어 결코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강조한다. 전체 다섯 개의 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2연과 4연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 바로 상황과 시의 소재, 즉 주인공 제시이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점심도 지났으니, 몸은 지쳐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 출렁 허리가 휘는오후 시간인데 마침 비가 오고 있다. 그 비를 맞으며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한 / 순한 얼굴의 꽃이 있다. 바로 라일락꽃이다.

1연에서 시인은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 향기는 젖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이를 두고 꽃잎의 방수성질을 근거로 꽃에 물이 묻을지언정 결코 젖지 않는다거나, 향기는 후각적인 감각인데 촉각적 감각인 비에 젖는다는 표현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따진다면 이는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꽃의 외양은 비에 젖겠지만 꽃의 본질 - 정체성인 향기는 결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연에서 시인은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1연의 진종일하루 종일, ‘향기빛깔로 바뀌었을 뿐이다. 향기나 빛깔 둘 다 라일락꽃의 본질 즉 정체성이기에 빗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5연에서는 앞의 1, 3 연을 합쳐서 정리한다. 진종일혹은 하루 종일비가 내린다고 하여도 꽃은 젖겠지만 꽃의 향기는 젖지 않고 빛깔 역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바로 주변의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혹은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비본질적인 것은 변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것, 즉 정체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말이다. 시인은 이를 비에 젖지 않는 라일락의 향기와 빛깔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한다. 그런데 라일락꽃만 그럴까. 모든 꽃 아니 어쩌면 모든 자연물들이 그렇지 않겠는가. 문제는 하고 많은 자연물 중에 왜 하필 꽃이고, 많고 많은 꽃 중에 왜 라일락이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자연물 중에 꽃은 약한 존재이다. 약한 존재가 하루 종일 내리는 비라는 시련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모습이 더 강렬하지 않을까. 하긴 반드시 라일락꽃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목이 그냥 이라고 해도 의미는 통한다. 그러나 - 라일락꽃 - 진한 향기 - 연보라 여린 빛이라는 시인만의 특수한 경험이 그 많은 꽃들 중에 라일락꽃을 제시한 것이리라. 마침 비가 내리는 오후, 우산을 받고 라일락 나무 옆에 서서 꽃향기나 연보라 빛깔에 취한 시인 - 그 안에서 시인은 본질, 주체, 아이덴티티 혹은 자아라는, 결코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생각한다. 이런 것이 바로 시인의 통찰력이지 않겠는가.

사족 하나 - 시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시를 읽다가 문득 안하던 짓 하면 죽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젊어서부터 친구들과 만나기만 하면 2, 3차는 당연하고 새벽녘까지 마셔야만 했던 녀석이 있다. 어느 날부터 1차 식사가 끝나고 곧바로 집으로 간다는 녀석을 보며 우리들은 쟤가 웬일이니, 죽을 때가 된 모양이지하며 놀라워했다. 그러고 두어 달 뒤 녀석의 부고를 받았다. 녀석의 죽음은 이 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런데 평생 해오던 습관, 비록 그것이 나쁜 짓이었다 해도 어쩌면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을 나이 들어 고치려 하면 죽는다는 말이 왜 이 시를 읽으며 생각이 나고 녀석의 얼굴이 떠오를까. 본질적인 것, 아니 평생 그렇게 살아 본질이 되어버려 이미 자신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자. 그냥 그렇게 살다 가게 뭐라고 나무라지 말자. 시를 읽다가 별의 별 생각을 다 한다. 시에 미안하고 시인에게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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