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우형숙의 <군자란>

복사골이선생 2018. 12. 19. 01:27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188)



군자란

 

우형숙

 

겨우내 동안거

풀빛 방에 칩거하다

 

예절바른 봄 햇살에

물음표로 고개 들다

 

어느새

꽃대궁 활짝

세상 후리는 저 도도함

 

 

군자란(君子蘭)은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난과가 아니라 수선화과이다. 즉 이름만 이지 실제는 난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꽃뿐만 아니라 넓고 긴 잎도 관상가치가 높아 원예용으로 온실 또는 실내에서 키운다. 줄기는 없고 잎은 길이 45cm, 너비 5cm 정도로 크고 길며 뿌리에서 직접 나와 좌우로 두 장씩 갈라져서 가지런하게 자란다. 13월에 잎 사이에서 편평하고 굵은 꽃자루가 길게 나와 그 끝에 백합 비슷한 주황색 꽃이 1220개 가량 핀다.


우형숙의 시 <군자란>은 이 꽃이 피는 과정과 함께 꽃의 외양에서 도도함을 읽어내고 있는 시조이다. 시를 읽어 보면 시인이 직접 군자란을 키운 경험이 드러난다. 겨울에는 방 안에 두고 봄이 되어서야 햇살을 쏘이며 이어 꽃이 피는 과정의 서술이 군자란을 직접 키워본 경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초장은 겨우내 동안거 / 풀빛 방에 칩거하다라 되어 있다. 즉 겨울 내내 동안거에 들었다니 분명 추위를 피하려 집 안에 두었음을 말한다. 그것도 풀빛 방이라니 다른 화초들과 함께 거실을 장식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동안거란다. 불교에서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바깥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힘쓰는 일이지 않은가. 군자란도 다가오는 봄에 꽃을 피우려 집 안에 칩거하며 수행을 했다는 표현이다. 그럴 듯하다.


중장은 예절바른 봄 햇살에 / 물음표로 고개 들다고 했는데, 여름날처럼 뜨거운 햇빛이 아니라 은은한, 따스한 햇빛이니 이를 예절바른이라 했다. 그것 참 그럴 듯하다. 그런데 고개를 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잎이다. 두 갈래로 뻗어 휘어진 잎은 어찌 보면 물음표처럼 생겼다. 바로 겨우내 동안거에 들어 꽃 피울 생각을 하다가 봄이 되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우선 잎이 자라는 것이리라.


종장은 꽃이 핀 모습이다. 초장과 중장은 2행으로 구성했지만 종장은 3행이다. ‘어느새를 따로 떼어 한 행으로 했다. 그만큼 중장에서 잎이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종장의 꽃대궁이 올라온 것처럼 느꼈던 모양이다. 즉 잎과 꽃대궁 그리고 꽃이 따로따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잎이 고개를 드는 것 같더니 어느새꽃대궁이 올라오고, 꽃대궁이 올라오는 것 같더니 어느새꽃이 피었다는 연속의 뜻이다. 물론 시인의 시각이다. 그런데 꽃이 핀 모습을 시인은 세상 후리는 저 도도함이라 한다. 꽃이 세상을 후린다니 - 그만큼 집 안 전체를 환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시인의 마음까지 환했으리라. 이런 모양을 도도함이라 표현한 것은 어쩌면 시인의 삶의 자세가 그렇기에 똑바로 올라온 꽃대궁도 그렇고 그 끝에 활짝 핀 꽃도 도도하게, 당당하게 보였으리라.


그런데 시 전체에 문장부호가 없으니 초장의 칩거하다와 중장의 고개 들다가 종결어미 로 끝나며 마침표가 생략된 것인지, 아니면 칩거하다가고개 들다가에서 연결어미 가 생략된 것인지 모호하다. 왜냐하면 어느 것으로 읽어도 뜻이 통하기 때문이다. 칩거하다가 봄 햇살 받으며 고개를 들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고개를 들다가 어느새 꽃대궁이 활짝 올라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나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 연결하여 읽으면 된다. 오롯이 독자의 몫이니까.

분명 시인은 군자란을 키운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안거라니. 거기에 꽃이 세상을 후리는이라니. 그래놓고도 모자랐는지 꽃이 핀 자태를 도도함이라 한다. 비록 행과 연 구분이야 현대시 기법을 따랐지만 이런 표현을 하면서도 시조의 기본 글자 수까지 맞추어내는 시인을 생각하면 그 상상력과 어휘력 나아가 표현력이 놀라울 뿐이다.


시조를 다 읽고 군자란 사진을 보니, 사진이기에 세상을 후리는 것은 모르겠고, 군자란 꽃 핀 모습이 참말로 도도하다.



△ 부천예총 행사장에서 시인 우형숙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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