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최두석의 <백운산 고로쇠나무>

복사골이선생 2019. 1. 9. 00:2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03)



백운산 고로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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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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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

고무호스가 줄줄이 뻗어 있다

친절하게도 그 고무호스가

일일이 방문드린 대상은 고로쇠나무

우수 경칩 무렵이면

나무마다 밑동에 구멍 꿇어

고무호수를 박아

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히는

고로쇠 수액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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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약수라 하지만

실상 나무에게는 피인 것인데

봄을 맞아 힘을 내려고

위장병에도 신경통에도 좋다고

하마 물마시듯 벌컥벌컥

한꺼번에 많이 들이켜야 효험 있다고

몇 통씩 사들고

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땀 흘리며

배 두드리며 마시는 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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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나무는 무환자나무목 단풍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 전남, 경남, 강원 일대와 일본 사할린섬 그리고 중국 헤이룽강 유역 산지 숲속에 자생하는데, 흔히 고로쇠 혹은 고로실나무, 오각풍, 수색수, 색목이라고도 부른다. ‘고로쇠란 뼈에 이롭다는 뜻의 한자어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한방에서는 이 나무에서 채취한 즙을 풍당(楓糖)이라 하여 위장병, 폐병, 신경통, 관절염 등의 환자들에게 치료용 약수로 마시게 한다. 이 고로쇠 약수는 나무의 1m 정도 높이에 채취용 드릴로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통에 받아 채취한다.

최두석의 시 <백운산 고로쇠나무>는 시 제목 그대로 백운산에 있는 고로쇠나무가 약수 채취에 시달리는 모습을 이를 마시는 인간들의 태도와 대비하여 인간의 야만성을 비판한다. 고로쇠 약수는 그야말로 약으로 먹는 수액(樹液)이다. 여러 질병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한방에서는 장기 복용약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수액이 건강음료로 알려지면서 마침 웰빙시대를 맞아 건강을 돌보려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전국의 고로쇠나무들의 수난이 시작되었음은 물론이다.


두 개의 연으로 구성된 시는 첫 연에서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는 모습을 제시하고 둘째 연에서 이를 마시는 인간들의 행태를 보여준다. ‘백운산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 / 고무호스가 줄줄이 뻗어 있다는데 이 고무호스들이 일일이 방문드린 대상은 고로쇠나무란다. 고로쇠나무에 꽂혀 있는 고무호스를 친절하게도고로쇠나무를 일일이 방문드린것으로 말한다. 역설이다. 이를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우수 경칩 무렵이면 / 나무마다 밑동에 구멍 꿇어 / 고무호수를 박아 / 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히는 / 고로쇠 수액을 받는단다. 바로 가장 약성이 좋은 때를 맞추어 고로쇠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약수라 하지만 / 실상 나무에게는 피가 아닌가. 마치 환자가 탕약을 마시듯이 사람들은 고로쇠나무의 피를 채취하여 마신다. ‘봄을 맞아 힘을 내려고마시고 어떤 이는 위장병에도 신경통에도 좋다니 마신다. 한방에서는 분명 장복을 하면 여러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꾸준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하마 물마시듯 벌컥벌컥마신다. 어디서 들었는지 한꺼번에 많이 들이켜야 효험 있다는 말을 믿고 그렇게 마시는 것이리라.


그렇게 고로쇠나무 수액을 마시는 사람들이 위장병, 폐병, 신경통, 관절염 등의 환자들일까. 시인이 보기에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건장한 사람들이 고로쇠수액을 몇 통씩 사들고는 환자가 아님에도 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땀 흘리며 / 배 두드리며 마시는 자도 있다고 한다. 환자에게 오랜 기간 마셔서 효과를 보라고 한 것을, 그러기에 약수인 것을, 사람들은 건강에 좋다고 하니 그저 많이 마시면 좋은 줄 안다. 그들이 마시는 수액은 고로쇠나무에게는 피이다. 피라면 생명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나무의 생명을 뽑아 기껏 땀으로 배출하고 만다.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망 - 무지에서 온, 건강하고자 하는 욕망이요 고로쇠나무의 생명은 생각하지 않는 그야말로 탐욕이리라. 게다가 건강을 위한답시고 일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억지로 땀을 흘리며 고로쇠나무 수액으로 몸 속 수분을 보충하는 사람들 - 정말 그들은 건강해졌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으리라. 시인의 눈에 그들은 나무는 생각 않고 자신의 몸만 아끼는 탐욕 덩어리들일 뿐이다.


친절하게도일일이 방문드린다는 표현은 역설을 넘어 인간의 행위에 대한 비아냥이다. ‘나무에게는 피인 것을 건강을 위한답시고 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벌컥벌컥’, ‘배 두드리며마시는 인간들의 탐욕스런 행위들 - 시인은 자연을 사랑하자거나 나무를 보호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네 인간의 탐욕스런 모습만 보여준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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