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우한용의 <곶감>

복사골이선생 2019. 1. 10. 05:0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05)




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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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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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더불어

씨앗에서 싹트고, 잎이 벌고, 열매가 달리고,

열매가 익어서 고운 때깔 빚어내는

이토록 경이로운 축복 가운데

내가 시간과 더불어 조용히 삭아가는

어느 추운 밤 느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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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으로 익었던 감을 칼로 도려

상처난 살갗에 물기 가시고

서리가 끼더니 마침내 시설(柹雪) 눈이 내려

눈 속에 피는 복수초 기다려 견디는 추위

인정은 시간과 더불어 익고

축복의 눈 옅게 덮인 속에

비칠 듯 비칠 듯 따뜻한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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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밑 흘러가는 물줄기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비늘

삭아가던 핏줄이 팔딱거리며 살아가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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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은 껍질을 벗겨 말린 감을 일컫는데 한자어로 건시(乾枾)’라 한다. 생감을 완숙되기 전에 따서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것으로 장기간 저장할 수 있어 명절이나 제사 때 빠지지 않는 과일의 하나이다. 겨울철이 제철인 곶감은 추운 겨울날 변변찮은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쫄깃한 식감에 달콤한 맛으로 최상의 영양 간식이었다. 한방에서는 기침과 가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 설사에도 좋다고 전해지는데 칼로리가 낮아 비만인 사람에게 적합하여 웰빙시대를 맞아 인기를 얻고 있다.

감을 말린 것이라 하니 간단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8월에 잘 익은 단단한 감을 나무에서 따서 껍질을 벗기고 큰 목판에 펴놓아 비를 맞지 않도록 말린다. 위가 검어지고 물기가 없어지면 뒤집어놓고, 마르면 또 뒤집어 말린다. 다 말라서 납작해지면 모양을 잘 만들어 물기 없는 큰 항아리에 넣는데 감껍질을 같이 말려 켜켜로 격지를 두고 위를 덮고 좋은 짚으로 덮어 봉하여 두었다가 시설(枾雪 : 곶감 거죽에 돋은 흰 가루로 감의 당분이 농축된 것)이 앉은 뒤에 꺼내면 맛이 더욱 좋다고 한다.

우한용의 시 <곶감>에서 화자는 곶감을 먹으며 곶감이 생감으로 돌아가려는 뜻을 읽고 있다. 전체 세 연으로 구성된 시는 첫 연에서 감이 익어 말라서 곶감이 될 때까지를, 둘째 연에서는 곶감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함께 곶감을 먹는 상황을, 마지막 연에서는 곶감을 갈랐을 때 보이는 곶감 속살에 대한 느낌을 그린다.

어느 과일이 그렇지 않겠는가만, 감도 시간과 더불어/ 씨앗에서 싹트고, 잎이 벌고, 열매가 달리고, / 열매가 익어서 고운 때깔 빚어내지 않겠는가. 시 속 화자는 이를 이토록 경이로운 축복이라 한다. 바로 곶감을 먹는 모습 - 자연이 우리들에게 준 축복이리라. 때는 화자가 시간과 더불어 조용히 삭아가는 / 어느 추운 밤 느지막에란다. 곶감은 겨울이 제철이니 추운 밤이리라. 시간과 더불어 삭아간다니 그만큼 한 해를 보내는 혹은 새 해를 맞는 감회까지 드러난다.

이제 곶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을빛으로 익었던 감을 칼로 도려 / 상처난 살갗에 물기 가시고 / 서리가 끼더니 마침내 시설(柹雪) 눈이 내린단다. 생감의 물기가 어느 정도 마르면서 당분이 농축되어 표면에 앉는데 이는 시설(柹雪), 글자 그대로 감눈이다. 겨울이니 눈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일단 눈으로 보니 눈 속에 피는 복수초 기다려 견디는 추위까지 느껴지고, 시장에서 사 온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았던 모양인지 인정은 시간과 더불어 익는다고 한다. 이제 곶감을 갈라 먹는데 곶감의 표면 즉 축복의 눈 옅게 덮인 속이 드러난다. 화자의 눈에는 곶감의 속살에서 비칠 듯 비칠 듯 따뜻한 핏줄이 보인다.


그 핏줄은 얼음장 밑 흘러가는 물줄기이다. 곶감 표면의 흰 분말을 시설(柹雪)이라 했으니 눈이요, 눈이니 곶감을 가르면 바로 얼음장 밑과 같지 않겠는가. 앞 연에서 핏줄이라 한 것은 이제 그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줄기로 보이고, 물줄기로 보고 보니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비늘이 생각난다. 연어 - 회귀성 물고기가 아니던가. 여기서 화자는 곶감의 속살도 마치 연어처럼 삭아가던 핏줄이 팔딱거리며 살아가거니라 감탄을 한다. 읽고 보니 맞다. 곶감의 속살에 있는 핏줄은 연어처럼 생감 시절을 잊지 못하고 팔딱거리고 있으리라.

이 시의 핵심어는 시설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 속에 시설은 한자까지 병기하고 각주를 달아놓았다. 시인은 시 말미에 그 각주를 받아 ‘*곶감 겉에 피어나는 하얀 분을 시설(柹雪)이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달아놓았다. ‘시설부터 시작하여 - 얼음장 - 핏줄 - 물줄기 - 연어 - 팔딱거림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지 않은가. 나 같은 무지렁이야 그저 먹기 바쁜데 시인은 곶감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곶감의 속살에서 그 마음까지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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