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송태옥의 <도라지꽃幻>

복사골이선생 2019. 1. 12. 07:3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07)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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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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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말을 하고 싶었어요

어둠의 나날을 땅 속에서 지내고

새순이 돋자 이슬을 맞아가며

당신을 그리워했어요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당신에게 들릴 말을 내 안에 키웠어요

새잎을 하나씩 틔워가며 건넬 말을 키웠어요

한 잎 한 잎 고개를 내밀 때마다 내 말은 자라났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내 말이 응어리졌어요

수줍음이 보라빛으로 피어났어요

나는 보라빛 말을 했어요

지금 내 말이 들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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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은 빨강의 힘과 파랑의 우아함이 합쳐진 색으로, 흔히 고귀한 색이라 한다. 그래서 보라색을 직관력, 통찰력, 상상력, 자존심 그리고 관용과 긍정을 나타내는 색으로 인식한다. , 우아함과 품위, 화려함을 상징하며 신비스럽고 개성 있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보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미적 센스가 뛰어나다고 하며 정열의 빨강과 고독의 파랑으로 만들어진 탓에 때로는 정서불안, 질투나 우울 등 복잡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고도 한다.

송태옥의 시 <도라지꽃>을 읽다 보면 시인이 도라지꽃의 보라색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잘 알고 있듯이 도라지는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뿌리는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쓰이고 78월에 흰색과 보라색으로 꽃이 피는데, 꽃이 지면 열매를 맺고 여기서 씨앗이 나와 주위는 물론 새의 배설을 통해 멀리까지 퍼진다. 시 속 화자는 도라지꽃 중에 흰색이 아니라 보라색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화자의 말을 따라가 보자.


화자는 보라빛 말을 하고 싶었단다. ‘보랏빛 말은 어떤 말일까. 그 말을 하기 위해 화자는 어둠의 나날을 땅 속에서 지내고 / 새순이 돋자 이슬을 맞아가며 / 당신을 그리워했단다. 여기서 보랏빛 말이 그리움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그 그리움을 표하기 위해 땅 속에서 발아하여 새 순이 돋아 땅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어서새 순은 점점 자랐으리라.

키가 크고 줄기를 뻗고 잎이 피어나며 화자는 당신에게 들릴 말을 내 안에 키웠단다. 언젠가는 당신을 만나 그리움의 말을 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찌 말을 할지 자신의 몸 안에 그리움을 키웠다는 말이다. 그렇게 새잎을 하나씩 틔워가며 건넬 말을 키웠는데 한 잎 한 잎 고개를 내밀 때마다 내 말은 자라났다고 한다. 그냥 자라기만 하지 않는다. 하고픈 말을 안으로만 키웠으니 그러던 어느 날 내 말이 응어리졌으리라. 응어리가 졌으니 언젠가는 틔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응어리가 화를 부를지도 모른다.

드디어 오랜 시간 잎으로 줄기로 몸 안에 키운 말들, 그리움의 말들, 수줍음이 보라빛으로 피어났단다. 바로 나는 보라빛 말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화자는 지금 내 말이 들리시나요?’라 묻는다. ‘내 말은 어떤 말일까. 그것은 보랏빛 말 즉 그리움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화자가 자신의 말이 들리냐고 묻는 것은 바로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당신은 아시나요라 묻는 것이리라.

시의 제목이 도라지꽃이다. 은 헛보일 환, 변할 환이다. 다른 말로 하면 환상(幻想)이다. 시인은 도라지꽃을 보며 어떤 환상에 젖었던 모양이다. 그 환상은 누군가를 그리워하지만 그립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만 키워냈다가 그것이 한이 되고 응어리가 져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저절로 터져 나온 말 - ‘당신은 내 마음을 아시나요?’라 묻는 상황이다. 바로 그 환상은 보라색 도라지꽃을 보며 느낀 것이다.


누군가를 몹시도 그리워하고 있는 시인이 자신의 마음을, 꾹꾹 참아왔던 그리운 마음을 보라색 도라지꽃으로 환치시켜 토해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해요체를 통해 부드럽게 속삭이고 있다. 조곤조곤 그리운 마음을 전하는 시인의 마음 - 게다가 보라색임에랴. 도라지꽃이 피어나기 전, 봉오리 상태에서 잎이 벌어지며 꽃이 활짝 피는 모습을 보면 시인의 마음, 그리운 마음을 전하려는 그 의지를 실감할 수 있다.


도라지꽃이 피는 모습에서 사랑의 말을 전하고픈 마음을 읽어낸 시인은 그것을 이라고 짐짓 둘러대며 슬쩍 마음을 감춘다. 참 여리지 않은가. 이런 고백을 듣는다면 그래요, 나도 들었답니다.’라 말하며 슬며시 손을 잡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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