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문숙의 <홍연(紅蓮)>

복사골이선생 2019. 1. 13. 03:1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08)



홍연(紅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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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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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진흙 속에서 그냥 피어난 줄 아니

뿌리 속에 연탄구멍처럼 뚫려있는 터널을 봐

냄새나는 고요와 싸우며

불길을 제 속으로 말아 넣고 산 흔적이지

들숨만으로 견뎌온 것들은

제 안에 터널 몇 개쯤은 갖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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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빗줄기에도 뿌리 뽑힐 두려움에

제 큰 잎을 벌려 빗물을 받아내는 저 동물성을 봐

물렁물렁한 생을 딛고

흔들리지 않으려 바닥을 움켜잡고 버틴 울음이지

직립이 아닌 수평으로 발을 뻗쳐가며

게걸음으로 바닥을 기어다닌 비굴함이지

비온 뒤 더욱 붉어지는 저 핏빛 울음 좀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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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프로테아목 연꽃과의 여러해살이 수초로 아시아 남부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식물로 연못이나 논밭에서 재배하는데, 꽃은 78월에 피는데 홍색 또는 백색이다. 석가모니가 연꽃을 따서 들고 대중들에게 보였는데 가섭(迦葉)만 그 의미를 알고 미소로 답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마음에서 마음으로 도()를 전한다는 뜻의 염화시중(拈華示衆)’이란 말에서 보듯이 연꽃은 불교의 정신세계와 불자들의 부처를 향한 신앙심을 짙게 투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꽃이라 할 수 있다.

문숙의 시 <홍연(紅蓮)>에는 제목 그대로 붉은색 연꽃의 아름다움 이면에 있는 시련을 풀어낸다. 시 속 화자는 첫 행에서 연꽃이 진흙 속에서 그냥 피어난 줄 아냐고 묻는데 이는 그냥 피어난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 송이 국화꽃이 피어나기까지 소쩍새의 울음, 천둥의 울음, 무서리…… 가 있었다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즉 첫 행은 한 송이 연꽃이 피기까지 여러 시련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 시련은 어떤 것일까. 연뿌리를 보면 구멍이 있는데 화자는 이를 연탄구멍처럼 뚫려있는 터널이라 한다. 화자는 그 터널을 냄새나는 고요와 싸우며 / 불길을 제 속으로 말아 넣고 산 흔적이라 인식한다. 즉 연꽃이 피기 위해서는 냄새나는 고요와 싸워야 했고 불길 속에 제 몸을 던져야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들숨만으로 견뎌온 것들은 / 제 안에 터널 몇 개쯤은 갖고산다고 한다. 날숨은 내 뱉는 숨이요 들숨을 들이키는 숨이다. 그러니 뭔가 자신의 시련이나 자기주장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고 온갖 불만이나 고통을 안으로만 넣어 참고 견디었기에 아름다운 연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인내가 가슴에 구멍 뻥뻥 뚫리게 만들었으리라.

여기서 화자는 잎의 역할도 강조한다. 연꽃은 식물이지만 연잎은 동물성 기능을 한다는데, ‘작은 빗줄기에도 뿌리 뽑힐 두려움에 / 제 큰 잎을 벌려 빗물을 받아내는행위가 그렇다고 한다. 이를 다시 물렁물렁한 생을 딛고 / 흔들리지 않으려 바닥을 움켜잡고 버틴 울음으로 해석한다. 나아가 직립이 아닌 수평으로 발을 뻗쳐가며 / 게걸음으로 바닥을 기어다닌 비굴함으로 본다. 이 비굴함 역시 앞 연에서 말한 인내이리라. 꽃을 피우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뎌내는 행위를 비굴함이라 했는데 이는 역설이다. 그 비굴함이 없었다면 꽃은 피지 않았으리라. 참고 견뎠기에 비온 뒤 더욱 붉어지는 저 핏빛 울음으로 연꽃이 피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화자도 홍연을 보며 저 핏빛 울음 좀 봐봐라 감탄하지 않았겠는가.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남모른 시련이 담겨 있다. 그런 시련을 참고 이겨냈기에 오늘날의 성공을 이룰 수 있지 않았겠는가. 연꽃, 그 중에서도 화자는 홍연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홍연은 바닥을 기어다닌 비굴함을 이겨내느라 들숨만으로 견뎌온가슴속에는 연탄구멍처럼 뚫려있는 터널이 생겼다. 그리고 빗물을 받아내는 저 동물성바닥을 움켜잡고 버틴 울음으로 시련을 견뎠다. 여기서 비온 뒤 더욱 붉어지는은 바로 그런 시련을 이겨낸 홍연의 삶을 대변한다.


마지막 구절, ‘핏빛 울음은 그 시련을 참고 견디며 들숨만으로, 속으로만 삭인 결과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에 그 색이 핏빛이라는 뜻이리라. 참고 참았던 것이 어느 순간 꽃으로 피어 날 때 그 환희가 핏빛으로 화한 것이리라. 내 눈에는 그저 붉은 한지를 펼쳐놓은 듯한 아름다움만 보였는데 시인은 그 아름다움 이면의 시련, 홍연의 삶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시인의 눈 - 바로 통찰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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