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양숙의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 - 왕버들>

복사골이선생 2020. 2. 21. 01:0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38)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

- 왕버들

 

김양숙

 

물구나무 선 절벽 사이에 코를 빠뜨렸다 젖은 혀가 주왕산 아랫도리를 핥았다 자꾸 허물어지던 뼈가 서서히 고개를 쳐들었다 몸 안에 낡은 발자국을 찍고, 낯선 동굴을 만들고, 삭은 목탁소리 그 안에서 한 때를 보냈다 제왕절개帝王切開로 섬을 낳지 못한 얼굴이 떠올랐다 뼈 없는 자식을 낳았다 자궁 속에 문신을 새긴 여자 그곳을 향해 걷고 있다 손톱 밑으로 난 길이 어두웠다

 

삼백 년을 건너온 왕버들 너는 오래전 물로 번식하는 나무였을 것이다 뿌리는 넘치고 흘러 바이칼호 물길을 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말발굽소리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결박이 풀리지 않았다 몸 어디쯤에서 황지潢池가 시작되었을까 무포산舞砲山 넘어온 하늘이 눈발을 당겼다 낮은 물소리는 무엇으로 몸 바꿨을까

 

 

주산지(注山池)는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주왕산국립공원에 있는 저수지이다. 주위는 주왕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렀고, 주왕산 영봉에서 뻗친 울창한 수림의 풍광이 사계절 뛰어난데, 연전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이곳에서 촬영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주산현(注山峴) 꼭대기 별바위에서 계곡을 따라 흘러온 맑은 물은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 특히 호수 물 속에 자생하고 있는 고목의 능수버들과 왕버들 20여 그루가 유명하다.

김양숙의 시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는 부제 왕버들이 말해주듯이 바로 주산지 왕버들을 그리고 있다.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며, 높이는 약 20m, 지름 1m로 자라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인데 우리나라 충남, 충북, 강원 등지와 일본, 중국에 주로 분포한다. 특히 주산지 왕버들의 수령은 대부분 300년 이상이라는데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왕버들에서 태고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고 그 풍모 또한 남다르다. 수면에서 큰 줄기가 뻗은 왕버들은 주산지 말고는 찾기 어려운 장관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는 전체 세 개의 연으로 된 산문시로 왕버들 자신과 시인의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다. 1연은 왕버들의 탄생과 생태 그리고 외양을 그려낸다. 그런데 시 속에 등장하는 코를 빠뜨렸다’, ‘제왕절개’, ‘뼈 없는 자식’, ‘문신을 새긴 여자…… 등의 어휘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려 하면 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어휘들은 시인이 주산지 왕버들을 보며 느낀, 지극히 주관적인 특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들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독자는 그저 시를 읽어가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실제 주산지 물 속에 서 있는 왕버들을 보면 참 신비롭다. 물 속에 자라는 나무라서도 그렇겠지만 300년 이상 그렇게 견뎌왔다는 데에 경외감까지 들게 된다. 갈라져 속 살을 드러내는 몸통도 그렇지만 잔 가지에 매달린 잎이라든가 물 그리고 주변 숲과 어우러진 풍광 앞에 서면 그 신비함은 더욱 오묘해진다. 시인의 눈에는 주산지 왕버들이 물구나무 선 절벽아래 젖은 혀가 주왕산 아랫도리를 핥는 것처럼 서 있는 것이요, ‘자꾸 허물어지던 뼈를 키워 오랜 세월 견디며 몸 안에 낡은 발자국을 찍고, 낯선 동굴을 만들다고 상상한다. 그리고는 삭은 목탁소리 그 안에서 한 때를 보냈을 것으로 인식한다. 시는 통째로 삼키라 했던가. 표현된 어휘들에 집착하여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혀내려 한다면 시인의 상상력이 빚어놓은 이미지들을 놓치기 쉽다.

사실 1연에서 말하는 것은 주산지 왕버들의 신비한 모습이다. 직접 주산지에 가 왕버들을 본 독자라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절벽’, ‘주왕산 아랫도리’, ‘낡은 발자국’, ‘낯선 동굴’, ‘삭은 목탁소리…… 들은 주왕산 주산지 그리고 물 속에 선 왕버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2, 3 연이다. ‘삼백 년을 건너온 왕버들은 사실이다. 이를 통해 너는 오래전 물로 번식하는 나무였을 것이다는 판단은 지극히 시인의 주관적인 상상이다. 바로 주산지의 역사와 함께 300년을 버티고 선 나무에 대한 경외이다. 그런 긴 세월을 견디며 뿌리는 넘치고 흘러 바이칼호 물길을 열었을 것이다는데 시공을 초월한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오랫동안 멈추지 않은 말발굽소리는 바로 바이칼호와 주산지의 거리이리라.

물 속에 서 있으니 당연히 오래된 결박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요, 오랜 세월을 견뎠으니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황지潢池가 몸 어디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시인은 상상을 한다. 그런데 주왕산과 마주하고 있는 무포산 넘어온 하늘이 눈발을 당겼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시인은 겨울에 주산지에 갔던 모양이다. 오랜 세월 견딘 왕버들을 하늘도 눈을 내려 축복한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하늘이 주산지 왕버들 앞에 선 시인을 반겼을까. 어쩌면 둘 다이리라. 겨울이라 더욱 잔잔한 호수, 아니 얼음이 얼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낮은 물소리는 무엇으로 몸 바꿨을까란 상념으로 이어진다.

나는 주왕산 주산지에 가 왕버들을 직접 봤다. 주산지 풍광과 물 속 왕버들을 보며 나도 감탄을 했다. 나중에는 사진작가들이 찍어놓은 멋진 사진들을 보며 또 감탄했다. 그리고 오늘, 김양숙의 시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주산지 왕버들을 눈 앞에 보듯한다. 그래, 300년 세월이 흘렀다지만 주산지 왕버들은 이제 뼈를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 내용도 그렇지만 제목에서도 시공을 넘나드는 시인의 상상력이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