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양숙의 <기둥서방 길들이기 — 나팔꽃>

복사골이선생 2020. 2. 4. 01:33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37)








기둥서방 길들이기

  — 나팔꽃

 

김양숙

 

애초부터 더듬이가 긴 건 아니었어요

내 놓을 것 하나 없는 몸뚱아리 지탱하려고

허방다리 짚다 수없이 넘어지고

꼿꼿한 기둥하나 걸리기만 해라 아침마다 되뇌이다

길가에 서있는 당신을 처음 만났지요

당신은 걸어서 오라고 했지만

나는 기어서 갔지요

한 발 한 발 허공에 늘인 줄을 따라

집 한 채 들이고 세간을 풀었지요

행간에 창을 내고

한 땀 한 땀 문패를 새겼지요

새벽이면 피멍든 이슬

창 아래로 쏟아 내며 내민 촉수

당신의 허리를 친친 감았지요

몸을 뒤틀어야 피어나는 꽃

나중에 알았지요

당신에게 나를 묶는 일이 한나절이면 지고 마는

보라색 교태를 흘리는 일이란 걸

 

 

기둥서방(書房)’이란 기생이나 몸 파는 여자들의 영업을 돌보아 주면서 얻어먹고 지내는 사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별로 좋은 이미지로 쓰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김양숙의 시 <기둥서방 길들이기>를 보고 언뜻 제목만으로 을의 위치인 기생이나 몸 파는 여자가 갑의 위치에 있는 사내를 길들이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시의 부제 나팔꽃에서 알 수 있듯이 기둥서방은 말 그대로 나팔꽃 줄기가 타고 오르는 기둥을 나팔꽃 입장에서 서방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는 나팔꽃이 기대어 자라니 그 기둥도 일반적 의미의 기둥서방이 될 수도 있으리라.

나팔꽃은 메꽃과 나팔꽃속의 한해살이 덩굴성 초본으로 길가나 빈터에 서식하며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 꽃이다. 해가 뜰 때 피어 오전 동안 입을 벌리고 있다가 해가 중천에 뜬 한낮에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래서 영어로는 아침에 피는 꽃, morning glory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꽃 모양이 나팔처럼 생겼다 하여 나팔꽃이라 부른다. 7~8월에 자주색, 흰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의 꽃을 피운다.

시의 제목이 기둥서방 길들이기이지만 실은 부제인 나팔꽃의 독백이다. 시 속 화자인 나팔꽃의 말에 따르면 한해살이 덩굴성 초본이지만 애초부터 덩굴손이 길지 않았단다. 여기서 덩굴손이 아니라 더듬이라는 동물성 어휘를 쓰고 있다. 일종의 활유가 될 터인데, 독백을 하는 꽃이니 그런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팔꽃 스스로 내 놓을 것 하나 없는 몸뚱아리 지탱하기 위해 여기저기 더듬다 헛수고만 하고는 내심 꼿꼿한 기둥하나 걸리기만 해라며 기회를 엿보았단다. 그러다가 당신을 만났단다. 바로 타고 오를 수 있는 줄 - 기둥이다.

나팔꽃이 덩굴손으로 기어 올라갈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을 만났으니 열심히 타고 올랐으리라. 기둥은 늘 보는 풀들로 생각하고 걸어서 오라고 했지만나팔꽃은 기어서 갔단다. 더듬이로 더듬어 길을 찾으려니 그만큼 느렸으리라. 그렇게 한 발 한 발 허공에 늘인 줄을 따라 / 집 한 채 들이고 세간을 풀었단다. ‘행간에 창을 내고 / 한 땀 한 땀 문패를 새겼다고 하니 줄을 따라 줄기가 자라고 이제 잎이 솟고 꽃도 피웠으리라. ‘집 한 채세간그리고 문패가 바로 그것들이다.


아침에 피는 꽃이니 빨간 나팔꽃은 새벽이면 피멍든 이슬이 되었으리라. 그만큼 열심히 꽃을 피웠다는 뜻이다. 그렇게 꽃을 피우며 더듬이로 계속하여 기둥, 당신의 허리를 친친 감았단다. 그런데 기둥을 잡고 왼쪽으로 돌아 감으며 타고 오르다 나중에 알았단다. 자신은 몸을 뒤틀어야 피어나는 꽃이라는 것. 그리고 온 몸으로 아무리 기둥을 묶어 봐야 아침에 피었다가는 점심이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한나절이면 지고 마는 / 보라색 교태를 흘리는 일이란 걸깨닫는다.

이렇게 보면 기둥서방 길들이기가 아니라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여인의 독백, 하소연이다. 줄을 타고 오르는 보라색 나팔꽃을 보며 시인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느 여인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그러니 기둥서방 길들이기가 아니라 기둥이란 임에게 퍼붓는 하소연이다. ‘길들이기라니. 대단한 역설이다. 자신의 기둥인 줄 알고 열심히, 친친 감아 올라 세간 다 갖추고 살림을 차렸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한 나절 피고 마는 신세였고, 그것도 겨우 기둥에게 교태를 흘리는 일이었다는 것 - 얼마나 허망할까.

그런데 시를 읽으면 줄을 타고 오르는 보라색 나팔꽃이 시나브로 떠오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휘 기둥서방을 들먹이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나팔꽃의 생태를 멋들어지게 그려냈을꼬. 시인의 예리한 시선 그리고 상상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