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종태의 <고마리>

복사골이선생 2019. 12. 27. 11:0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35)




고마리

 

김종태

 

개울가 도랑 옆에 살아도

끌밋한 잎사귀 하늘을 찌른다

 

졸졸 흐르는 물에 씻겨

꽃잎 새하얗다

 

그 속에서 빨래하는 누나

손목보다 더 흰 꽃잎 끝에

손톱 봉숭아물보다

더 곱게 물든 입술

 

토라져 뾰족 내민

앙증맞은 자태

 

물처럼 흘러간 사람을

기다리다 못내 터져버려도

행여 한 번 품은 마음이

가실 줄이 있으랴

 

큰 것만 찾는 눈에

어찌 띄랴 이 작은

숨은 정열

 

 

고마리는 우리나라 전역 낮은 산골짜기, 냇가 또는 마을 근처 도랑가 등 물이 있는 양지에서 높이 약 1m 정도까지 자라는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로 고만이라고도 한다. 꽃은 89월에 피는데, 가지 끝에 연한 홍색, 흰색에 붉은색이 섞인 색, 흰색 꽃이 뭉쳐서 달린다. 꽃의 형태와 피는 시기, 잎의 생김새 등에 변이가 많으며 메밀과 비슷하다. 어린 풀은 먹고 줄기와 잎은 지혈제로 쓴다고 한다.

김종태의 시 <고마리>에서는 이 풀의 꽃을 물처럼 흘러간 사람을 / 기다리다 못내 터져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시에서는 먼저 이 꽃의 생태를 제시한다. , 고마리가 비록 개울가 도랑 옆에 살지만 끌밋한 잎사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쩌면 하찮은 꽃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 기상 혹은 기품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졸졸 흐르는 물에 씻겨 / 꽃잎 새하얗다며 세속의 찌든 때를 다 씻어낸 순수한 꽃이라 인식한다.


고마리가 피어 있는 개울가 도랑에 누나가 빨래를 하고 있다. 여기서 고마리의 모습과 누나의 얼굴이 겹쳐진다. ‘손목보다 더 흰 꽃잎 끝에 / 손톱 봉숭아물보다 / 더 곱게 물든 입술은 고마리이기도 하지만 누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누나인지 고마리인지 갑자기 토라져 뾰족 내민 / 앙증맞은 자태라 한다. 왜 토라졌을까. 누나의 상황이 이어진다. ‘물처럼 흘러간 사람을 / 기다리다 못내 터져버린 것이다. 시인은 그런 마음이 터져 고마리꽃으로 핀 것으로 본다.

게다가 시인은 기다리다 못내 터져버린 그 마음을 행여 한 번 품은 마음이 / 가실 줄이 있으랴며 정몽주의 <단심가> 마지막 구절까지 가져와 강조한다. 그만큼 기다림과 그를 향한 마음에 변함이 없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강조되는 고마리의 생태와 누나의 마음은 큰 것만 찾는 눈에 / 어찌 띄랴 이 작은 / 숨은 정열이다. 맞다. 큰 것만 찾는 사람들 눈에는 고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누나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리라. 작은 마음, 숨은 정열이니 그 님의 눈과 마음에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숨은 정열은 누나가 그리워하는 님을 향한 것이다. 시인은 이를 고마리로 환치시켜 누나와 고마리를 겹쳐놓았다. 나는 고마리를 보며 그저 귀엽게만 느꼈는데 시인은 작은 / 숨은 정열로 읽고 있다. 그것도 누나를 등장시켜 누나의 정열과 고마리를 환치시키고 겹쳐놓는다. 어찌 고마리꽃 붉은 색을 보며 누나의 곱게 물든 입술을 떠올리고 이어 기다리다 못내 터져버린 것으로 생각했을꼬. 게다가 숨은 정열이라니…… 시인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