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강경주의 <곶감>

복사골이선생 2019. 12. 7. 21:18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33)


 




곶감

 

- 강경주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른다

 

가죽이 다 벗겨진

알몸뚱이

한 가닥 실에 꿰인 채

줄줄이 능욕을 당하고 있다.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잠도 재우지 않은 채

혼쭐을 빼는

육탈의 긴 시간

 

뼈마디 마디 다 녹아내린 다음

얼굴 몰골 다 허물어지고 난 다음

 

쭉쭉 찢어서 씹어먹는

저 혼비백산魂飛魄散

반성문 한 줄

 

꿀맛이다

 

 

곶감은 예로부터 명절이나 제사 때 쓰는 과일의 하나로 건시(乾枾)’라고도 한다. 흔히 8월에 잘 익은 단단한 물감을 택하여 껍질을 벗기고 꼭지를 떼어 큰 목판에 펴놓아 말리면서 물기가 없어지면 뒤집어 다시 말린다. 말라서 납작해지면 모양을 잘 만들어 항아리에 감껍질과 함께 켜켜로 넣어 좋은 짚으로 덮어 두었다가 시설(枾雪 : 곶감거죽에 돋은 흰가루)이 앉은 뒤에 꺼내 먹는다. 싸릿대에 꿰어 말리기도 하고 근래에는 굵은 실에 꿰어 말리기도 한다. 싸릿대에 줄줄이 꿰어 말린다 하여 싸릿대에 곶은(꽂은) 이라 했고 여기서 곶감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강경주의 시 <곶감>은 제목 그대로 생감이 곶감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피가 마르고 / 살이 마른다고 한다. 바로 감이 마르는 모습이다. 이를 가죽이 다 벗겨진 / 알몸뚱이한 가닥 실에 꿰인 채 / 줄줄이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데, 감을 생명체로 보고 사람들에게 능욕을 당하는 것으로 그려낸 것이다. 더구나 얼렸다 녹였다가 반복되고 잠도 재우지 않은 채 / 혼쭐을 빼게 되는데 이를 시인은 육탈의 긴 시간이라고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생감의 뼈마디 마디 다 녹아내리면 얼굴 몰골 다 허물어지게 되고 이 때에 비로소 곶감으로 태어난다. 생감을 그런 고난과 시련 속에 빠뜨려 곶감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 사람들은 그 곶감을 쭉쭉 찢어서 씹어먹는, 그때 생감을 괴롭힌 것에 대하여 반성문 한 줄을 남긴다. 바로 곶감이 꿀맛이다는 감탄이다. 얼마나 달콤하면, 얼마나 맛이 있으면 곶감을 먹은 사람들의 영혼마저 달아나는 혼비백산魂飛魄散의 꿀맛일까.

사실 시 전체는 곶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를 시로 만드는 것은 바로 마지막 부분, ‘저 혼비백산魂飛魄散/ 반성문 한 줄 // 꿀맛이다이다. 생감이 곶감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활유법으로 제시한 후 사람들이 곶감을 먹는 모습과 그 느낌을 덧붙여 훌륭한 한 편의 시로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 구성과 표현 - 바로 시인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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