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구정혜의 <물봉숭아>

복사골이선생 2019. 5. 25. 17:1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30)




물봉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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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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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살고자 했던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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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처럼 온몸으로 사랑받는

봉선화와는 달리

축축한 그늘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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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뒤편에 서서

뭇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말없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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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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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영향으로

비가 찔끔거렸는지

물봉숭아 눈이 퉁퉁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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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난소암 투병하던

옆자리가 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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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은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물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로 흔히 물봉선화’, ‘야봉선혹은 물봉숭아라 부른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골짜기나 물가의 습지에 무리지어 자라는데 줄기는 곧게 서고,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높이는 4080cm 정도까지 큰다. 꽃은 89월에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으로 피는데 지름이 3cm 정도이고 짙은 자주색의 꽃이 피는 것을 특별히 가야물봉선’,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물봉선이라 부른다.

구정혜의 시 <물봉숭아>는 이 꽃을 난소암으로 투병하는 여인으로 환치시킨다. 사실 물봉선의 꽃 모양이 언뜻 보면 나팔 같지만 여성의 난소와 그 생김이 비슷한데 물봉선이란 이름에 나오듯이 즉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어 시인은 이 꽃에서 여성의 난소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난소암으로 입원한 사람은 바로 물처럼 살고자 했던 / 그 여자이다. 물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아등바등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원만한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병으로 입원하고 수술하고 그리고 투병에 시달린다. 결코 원만하지 않다. ‘물봉선신데렐라처럼 온몸으로 사랑받는 / 봉선화와는다르다. 바로 그 여자의 삶이 그랬던 모양이다. 햇빛과 함께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축축한 그늘에서 산다그 여자물봉선과 같다. 그러니 언제나 뒤편에 서서 / 뭇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 말없이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 그 여자는 병실에서 난소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 멀어져 간. 어쩌면 가족들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입원한 날들이 지나면서 문병객도 하나둘 줄었을 테고 결국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태풍이 불었다. 그 영향으로 물봉숭아 눈이 퉁퉁 부었단다. 실제 비를 맞은 물봉선화의 꽃모양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실은 바로 그 여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난소암 투병하던 / 옆자리가 비워졌다는 것은 운명을 달리했다는 말이다. 죽었다는 표현을 그냥 옆자리가 비워졌다고 말하는 시인 - 죽음을 바라보는 시인의 인식이 드러난다. 삶과 죽음, 바로 자리가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이다. 죽으면 병실에 누웠던 침대의 자리가 비워지고 만다. 그것으로 삶은 끝난다. 어쩌면 오후에 다른 환자가 그 침상에 누우리라.

- 물봉선 - 난소암 - 그 여자로 연결되는 시상은 시인만의 독특한 관찰력이다. 물봉선의 모양에서 난소를 떠올리는 것도 그러려니와 어찌 물봉선을 난소암으로 죽어간 그 여자로 환치시켰을꼬, 여류 시인의 감각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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