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오유균의 <자목련>

복사골이선생 2019. 4. 4. 21:1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28)




자목련

 

오유균

 

깊게 들이마신 숨을 천천히

 

1/3을 보내고

 

정지.

 

가늠자 위에 핀 목표물, 눈과 눈 사이를

 

피가 튈 틈도 없이

 

뒤통수까지

 

눈이 마주치는 단 한 번

 

검지의 힘만으로, 44매그넘

 

명치의 정중앙

 

,

 

한 발

 

 

시인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접한 사물은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관념까지도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해낸다. 흔히 예리한 시각이라고들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를 상상력이라 해도 그렇고 통찰력이라 해도 설명이 부족하다.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물과 관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 - 바로 시()이기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오유균의 시 <자목련>이 바로 그렇다. 제목이 자목련이요 자목련을 시적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 눈에 비친 자목련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흔히들 알고 있는 자목련모양이나 생태와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시인은 지금 ‘44매그넘권총의 가늠자와 가늠쇠를 이은 시선 저 끝에 자목련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목련은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로 관목상인 것이 많으며 주로 관상용으로 키운다. 높이 15m에 달하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데 잎은 마주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검은 자주색이다. 꽃잎의 겉은 짙은 자주색이며 안쪽은 연한 자주색으로, 꽃잎의 겉면이 연한 홍색빛을 띤 자주색이고 안쪽이 흰색인 것은 자주목련이라고 한다. 자목련은 꽃잎 안팎 모두 자주색으로 언뜻 보면 핏덩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유균의 시 <자목련>은 시의 구성도 특이하다. 모두 11행인데 각 행마다 한 행씩 비워놓았다. 잘못 알면 11개의 연으로 구분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시를 따라가 보자. ‘깊게 들이마신 숨을 천천히 // 1/3을 보내고 // 정지에서 보듯이 시 속 상황은 지금 막 사격을 하기 위한 자세이다. 숨을 고르고 일말의 움직임도 없는 정조준 자세이다. 그 자세로 가늠자 위에 핀 목표물을 겨눈다. 그것도 눈과 눈 사이를’, 바로 눈썹과 눈썹 사이, 총을 맞으면 즉사하게 되는 아주 치명적인 부분을 겨눈다. 총알은 피가 튈 틈도 없이 // 뒤통수까지관통하리라. 상대와 눈이 마주치는 단 한 번에 실수 없이 상대보다 먼저 총을 쏴야하리라. ‘검지의 힘만으로격발을 한다. 총은 ‘44매그넘이다. ‘명치의 정중앙 // , // 한 발로 승부를 내야 한다.

분명 시 속 내용은 ‘44매그넘권총을 겨누고 막 사격을 하는 상황이다. 상대방보다 먼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명적인 살상을 해야만 한다. 그런 상황 속에 권총을 겨누는데 시의 제목은 자목련이다. , 맞다. 시인은 지금 자목련 한송이를 핏덩이로 보고 있다. 그것도 권총의 가늠자와 가늠쇠를 이은 시선 저 끝에 놓은 목표물이다. ‘피가 튈 틈도 없이 // 뒤통수까지에서 자목련의 모습이 그려진다. 총알이 자목련 꽃잎을 관통하는 것을 상상해 보면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시인의 눈에 자목련은 가늠자 위에 놓인 목표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다. ‘자목련을 보며 어찌 권총으로 겨누는 생각을 했을꼬. 동그란 그림이 그려진 과녁과도 다르고 사람의 머리 모양과도 다르다. 맞다. 바깥쪽 꽃잎 몇 장이 벌어지고 안쪽의 꽃잎은 입을 다물고 있을 때의 자목련모습은 가늠자를 통해 본 가늠쇠의 모양과 흡사하다. 게다가 온통 자줏빛 - 핏빛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찌 자목련이란 제목으로 권총 사격을 생각했을꼬.


시인의 상상력에 무릎을 치며 이제 막 벌어지는 자목련 꽃잎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말을 따라가며 긴장이 된다. 그래, ‘명치의 정중앙 // , // 한 발로 명중시켜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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