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영자의 <모과를 풍장하다>

복사골이선생 2020. 2. 4. 01:3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36)





모과를 풍장하다

) --> 

김영자

) --> 

낭창낭창해지려나 새봄의 햇볕에게 맡겨 놓으면 발효를 시작하려나 가슴으로 눕는 모과 한 알이 내게 온 것은 여행의 시작이었을 것. 아니면 인연이었을 것. 새끼손톱만 한 갈빛 반점이 번져 가는 중 들새들에게 내어놓으면 돌아보려나 아직 남아 있는 향기 때문에 조금씩 더 조금씩 건드려 보려나

) --> 

부드러움과 살아있음의 날이 주름도 잡히지 않은 채 돌처럼 굳어가다니 조금 남아 있는 정갈한 향기마저 사라지면 흙으로 가려나 풍장을 해야겠다 들새와 바람과 햇볕과 함께 그의 긴 그림자를 끌어안고 물어보아야겠다 뜨거움은 무엇인지 문득문득 스치고 가는 향기는 어디서 왔는지 이미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묵상의 소문

) --> 

) --> 

모과(木瓜)는 모과나무의 열매로, 중국 원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이전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전라남도, 충청남도, 경기도 등에서 많이 난단다. 타원 또는 공 모양으로 처음에는 녹색이다가 익어가면서 노란빛이 되고 울퉁불퉁해지는데, 향기가 뛰어나지만 맛은 시며 떫고 껍질이 단단해 과일전 망신이란 말이 뜻하듯이 날로 먹기는 어렵다. 그래서 방 안 혹은 차 안에 방향제로 많이 쓰이며 차를 만들거나 술을 담아 먹는다. 특히 숙취를 풀어주고, 가래를 없애주어 한방에서는 감기나 기관지염, 폐렴 등에 약으로 쓴다.

김영자의 시 <모과를 풍장하다>는 모과의 향기가 점점 사라지는 상태를 멀어져가는 사랑으로 환치시킨다. 두 연의 산문으로 된 이 시의 첫 연 첫 단어가 인상적이다. ‘낭창낭창해지려나라 했는데 낭창낭창이란 본디 가늘고 긴 막대기나 줄 따위가 자꾸 탄력 있게 흔들리는 모양을 뜻한다. 결국 내 사랑이 흔들리고 있음을 뜻한다. 이어지는 말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새봄의 햇볕에게 맡겨 놓으면 발효를 시작하려나라고 하는데 이는 모과의 향기가 새봄 햇볕에 흩어지며 향기를 넘어 새로운 맛으로 발효가 되는 것을 뜻하지만 실은 엷어진 사랑이 새롭게 돋아나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시 속 화자는 모과와의 인연을 말한다. 사과 배 등과 달리 모과는 꼭지가 위아래로 놓이지 못한다. 옆으로 놓인다. 이를 가슴으로 눕는다고 표현한다. 그런 모과 한 알이 내게 온 것은 여행의 시작이었을 것. 아니면 인연이었을 것이라 하는데, 결국 시 속 모과는 과일로서의 모과가 아니라 환치된 사랑이다. 즉 사랑이 내게 오며 그와의 여행이 시작되었고 이어 인연으로 발전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나보다. 모과가 시들어 새끼손톱만 한 갈빛 반점이 번져 가, 즉 사랑이 식으면 향기도 다 날아가고 들새들에게 내어놓아도 돌아보는 새가 없다. 그러니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아직 남아 있는 향기 때문에 조금씩 더 조금씩 건드려 보는 것이다. 그는 가버렸지만 그를 향한 화자의 사랑은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발효하게 되면 더 뜨거운 사랑으로 거듭나지 않겠는가.

이처럼 시 속에는 실제 모과의 모습과 화자의 사랑이 결합되어 있다. 모과가 부드러움과 살아있음의 날이 주름도 잡히지 않은 채 돌처럼 굳어가는 것은 사랑도 그렇게 식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금 남아 있는 정갈한 향기마저 사라지면 흙으로 가려나는 향기가 없어지고 모과는 썩어 버리지만, 이어지는 풍장을 해야겠다는 다짐은 사랑을 다 보내버리겠다는 다짐이다. 풍장(風葬)이라니. 시체를 지상에 노출시켜 자연히 소멸시키는 방법이 아닌가. 모과의 향기가 바람에 다 날아가버리듯 자신의 사랑도 그렇게 바람에 날려 보내겠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화자는 정말 사랑을 날려 보냈을까.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들새와 바람과 햇볕과 함께사랑을 했고, ‘그의 긴 그림자까지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끌어안고 물어보아야겠단다. 자신의 사랑을 바람에 날려 보내도 좋겠냐고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그간 사랑했던 뜨거움은 무엇인지그리고 잊으려 해도 문득문득 스치고 가는 향기는 어디서 왔는지말이다. 향이 다 날아가 버리면 모과는 갈빛 반점이 번져 가며 썩어가지만 화자의 사랑은 오히려 발효가 되어 더욱더 뜨거워진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사랑. 그러니 이미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묵상의 소문이 되지 않겠는가.


모과, 모과 향기, 여기에 풍장이라니…… 사랑을 모과로 환치시킨 상상력도 좋지만 풍장을 끌어온 기법도 참 탁월하다. 시인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다가 문득 가버린 내 사랑을 떠올린다. 나도 내 사랑을 풍장한 것일까. 시인의 말처럼 내 사랑도 발효가 되어 내 가슴에 더 뜨겁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