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239)
저기 동백
― 윤현순
저 꽃,
그러니까 여자는 동백을 닮아 있었네
몸속에 흐르던 더운 피가
피돌기를 멈추고 언저리로 밀려날 때
몸 밖으로 끌어와 꽃으로 게워내는 절정의 빛깔
몸 안에 있을 때는 사람이
꽃이었다가
몸 밖으로 보내면
꽃이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해서
꽃다운 여자라고 부르는
그녀는 꽃이 다 졌다고 말했고
나는 꽃이 지는 중이라고 중얼거렸네
소진한 일생을 눈보라에 묻는 일밖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이 아득한
내 몸에서 빠져나간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저기 저 꽃
‘동백(冬柏)꽃’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동백나무에 피는 꽃으로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추운 계절에 핀다 하여 동백(冬柏)이라 부른단다. 주로 섬에 많다는데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있고, 붉은 색이 주를 이루지만 흰 색도 있다. 꽃말은 열정적 사랑(붉은 동백) 혹은 비밀스런 사랑(흰 동백)이라지만 그보다는 ‘깨끗한 죽음’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다른 꽃과 달리 꽃봉오리 채로 어느 순간 툭하고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현순의 시 <저기 동백>에서는 이 꽃을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첫머리에서 시 속 화자는 동백을 ‘저 꽃’이라 제시하고는 ‘여자는 동백을 닮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객관화시켜 ‘여자’라 칭한다. 어떤 면이 닮았다는 것일까. 바로 ‘몸속에 흐르던 더운 피가 / 피돌기를 멈추고 언저리로 밀려날 때’를 사람에 대입하면 나이를 먹고 점점 늙어가는 때이리라. 화자 자신이 지금 그런 모양이다. 이를 ‘몸 밖으로 끌어와 꽃으로 게워내는 절정의 빛깔’을 드러내고 그 아름다움이 곧 동백이라는 뜻이다.
화자는 이를 더 구체화한다. ‘몸 안에 있을 때는 사람이 / 꽃이었’으리라. 동백꽃이 피기 전에는 동백나무 자체가 꽃이었단다. 그러나 ‘몸 밖으로 보내면 / 꽃이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꽃다운 여자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꽃이 피어나면 꽃 대문에 동백나무도 꽃나무가 되는 것이지 않은가. 젊은 시절 몸 안에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아름다웠을 테지만 그 젊음이 몸 밖으로 나가고 점점 나이를 먹으면 오히려 몸 밖의 젊음, 지나온 삶 때문에 그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이럴 때 우리는 흔히 ‘꽃이 다 졌다고 말’하겠지만 화자는 ‘꽃이 지는 중이라고 중얼거’린다. 아직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자위(自慰)일 수 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실은 ‘소진한 일생을 눈보라에 묻는 일밖에는 / 달리 어쩔 도리가 없이 아득한’ 마음이다. 이런 때에 젊은 날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동백꽃을 보면 화자는 ‘내 몸에서 빠져나간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 저기 저 꽃’이라 말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삶을, 자신의 모습을 동백꽃으로 환치시킨 시인은 어떤 분일까. 외모가 아니라 그 심성이 아직은 붉은 열정을 간직한 분이 아닐까. 혹자는 이 시를 가리켜 ‘한 남자의 여자로, 또 한 아이의 엄마로 존재하면서 미적 세계로 나아가는 의지가 뚜렷하게 엿보이는 시편 중 하나’라는데, 나는 시를 읽으며 삶이 아름다웠을 시인을 떠올린다. ‘꽃이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해서 / 꽃다운 여자’ - 멀찍이 떨어져 바라본 자신의 모습, 첫 행의 ‘저 꽃’과 마지막 행의 ‘저기 저 꽃’은 분명 아름다운 동백이고, 그 꽃은 시인 자신을 객관화시킨 시적 대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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