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박경희의 <산벚나무>

복사골이선생 2020. 2. 21. 01:1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41)





산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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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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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내게 주지 스님이 삭발하자, 말씀하시고는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 달 캄캄이다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 번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다가 미끄러져 돌아오는 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다 긴 머리 질끈 묶고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시린 산 아래 읍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는데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 내 눈을 깊이깊이 들여다보고는 오늘은 안되겠다, 하시며 바랑에 내 설움까지 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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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나무는 전국의 높은 산 숲 속에 자라는 낙엽활엽 큰키나무이다. 높이가 20m까지 자라며 꽃은 4월말~5월 중순에 흰색 혹은 연한붉은색으로 피는데, 지름이 2540mm 정도이고 꽃자루가 달린다. 벚나무와 많이들 혼동하는데, 흔히 꽃이나 열매가 벚나무의 경우 통상 수평으로 자란 서로 다른 길이의 꽃으로 구성되어 모두 같은 높이(산방꽃차례)로 달리는 데에 비해 산벚나무는 동일한 길이의 꽃들이 같은 점을 기점으로 방사형으로 피어나는(산형꽃차례)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전문가들로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박경희의 시 <산벚나무>에서는 이 나무를 여승(시인이 여자이니까)이 되고자 했으나 끝내는 이루지 못하는 여인으로 환치시켜놓고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언뜻 어쩌면 시인의 고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 속 화자는 지금 여승이 되기 위해 삭발을 기다리며 절에 머물고 있다. ‘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화자에게 주지 스님이 삭발하자고 말하고는 삭발을 해주지도 않고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 달 캄캄이란다. 잎 진 벚나무로 섰다는 것으로 보아 겨울 초입이리라.

그 스님이 다시 와 삭발을 해 주기를 기다리며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 번이란다. 이내 겨울이 오고, 기다리다 지친 화자는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지만 미끄러져 돌아왔단다. 속세에 머물지 못하고 다시 절로 들어왔다는 이야기이다. 하긴 산벚나무 입장에서 속세의 화려한 벚나무가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자는 산벚나무이다. 아무리 속세에 뜻을 두려 해도 벚나무를 따라 갈 수는 없다. 그러니 미끄러져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속세에 대한 미련, 인연을 끊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마침 되돌아 오는 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단다. 마음이 더 휘몰아쳤으리라. 그러나 긴 머리 질끈 묶어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지만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시린 산 아래 읍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린다. 아직도 속세와의 인연을 끊지 못했다. 미련이 남아 있다. 그렇게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니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기도 한다. 마침 그 때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이 화자의 눈을 깊이깊이 들여다보고는말씀하신다. ‘오늘은 안되겠다.

오늘은 안된다니. 맞다. 겨울 초입에 산을 넘어가 겨울을 다 보내고 산벚꽃 핀 봄이 왔건만 스님은 화자의 눈을 보고 금방 알아냈다. 화자가 아직 머리를 깎을 결심이 서지 못했음을. 아직도 읍내에, 속세에 미련이 많이 남아 있음을. 그러니 오늘은 안되겠다말을 한 것이고, 그 말끝에 짊어진 바랑에 화자의 설움까지 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단다. 그런데 화자의 설움, 읍내에 대한 미련, 속세와의 인연…… 들을 스님이 바랑에 넣고 가버렸으니 화자는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을까. 이제 산벚나무는 읍내의 화려한 벚나무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시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로 보아 끝내는 화자가 여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훗날 그 스님이 다시 돌아와 화자에게 뭐라 했는지, 아니면 화자가 그 스님을 찾아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산 아래 읍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는 화자의 모습에서 결코 속세와의 인연을 끊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 참나무, 모과나무, 읍내, 산벚꽃……으로 이어지는 화자의 흔들리는 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를 읽으며 문득문득 소박했던 산벚꽃이 눈에 아른거린다. 벚꽃축제의 화려함보다, 뭉텅이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보다 어쩌면 더 소박하고 수수한, 얼기설기 피어나는 산벚꽃이 우리네 정서에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산벚나무는 산벚나무요 산벚꽃은 산에 있을 때에 보아주는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속세에 대한 미련에 마음이 흔들리는 여인을 어찌 산벚나무로 환치시킬 생각을 했을꼬. 그 상상력이 참 참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