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형미의 <달개비>

복사골이선생 2020. 3. 6. 17:3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43)





달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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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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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머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달개비 마디 속에서 물소리가 들렸을까

무척이나 맑고 잔잔한 고요함이

잔가락도 없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것이

늪지에서 자라는 갈대 속에 든

얇은 청()을 울리는 듯한 그 소리

배꼽 아래로 검지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곳

꺾어지는 마디에서 가지 나오고 잎이 나와

각기 제 소리를 하는 달개비 아홉 대궁에

가만히 입을 포개어보면,

어느 비 오고 바람 부는 하늘 속을

새파라니 길어 올리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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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는 외떡잎식물 닭의장풀과의 한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전역의 길가나 풀밭, 냇가 습지에 자란다. 줄기 마디와 잎이 대나무를 연상시키며 닭의밑씻개라고도 부르지만 식물도감의 공식 명칭은 꽃의 모양이 벼슬을 단 닭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지어진 닭의장풀이다. 꽃은 대부분 파란색이지만 더러 분홍 또는 흰색도 있다. 봄에 어린잎을 식용하기도 하는데 경상도에서는 이를 명지나물이라 부른다.

김형미의 시 <달개비>에서는 이 꽃을 소리로 풀어낸다. 첫 행에서부터 이제 막 머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 달개비 마디 속에서 물소리가 들렸을까라 제기하며 꽃 모양보다는 꽃의 의미, 더 깊게는 꽃을 피우기 위해 줄기 속 수액이 흐르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 소리는 무척이나 맑고 잔잔한 고요함이요 잔가락도 없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늪지에서 자라는 갈대 속에 든 / 얇은 청()을 울리는 듯한소리 즉 맑은 소리이다.


게다가 그 소리는 배꼽 아래로 검지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곳바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이다. 단전이라니. 시인은 달개비 대궁 속에 흐르는 소리를 통해 정신세계에까지 다다른다. 시 속 표현 그대로 달개비는 꺾어지는 마디에서 가지 나오고 잎이 나온다. 그러니 어쩌면 각기 제 소리를 하는 달개비 아홉 대궁이 되리라. 그런데 그 아홉 대궁에 가만히 입을 포개어보면,’ 화자가 느끼는 것은 어느 비 오고 바람 부는 하늘 속을 / 새파라니 길어 올리던소리이다.


파란 하늘 그리고 청남색의 달개비 꽃, 바로 맑은 하늘을 그대로 길어 올려 꽃에 담았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비와 바람이 파란 하늘을 끌어왔고 대궁이 이를 길어 올려 청남색 꽃으로 화했다는 것이다. 시를 읽으면 마치 맑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시를 따라가다 보면 달개비의 청남색 꽃잎이 실은 파란 하늘빛을 끌어올려 담아낸 것이란 시인의 인식에 무릎을 치게 된다. 달개비를 본 사람이라면, 대나무 줄기 같은 대궁 그리고 청남색 꽃을 기억하며 시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의 감각이 참 절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