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이영식의 <겨울 담쟁이의 시>

복사골이선생 2020. 5. 9. 22:4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44)





겨울 담쟁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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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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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성 같은 돌담 집

몇 길 높이 담벼락에 시 한 편 걸려있다

겨울 담쟁이가 손으로 발로

온몸 밀어 올리며 쓴 육필 시화전이다

실핏줄로 겨우 이어붙인 아찔한

문장, 빛나는 수사修辭가 없다

여름내 펼치던 구호 모두 떼어내고

생활전선에 바짝 붙어선 동사뿐이다

허리춤에 매달린 끝물 열매 몇 개

그마저도 새들에게 털리고

알몸의 시는 겨울벽화로 붙어 있다

CCTV가 곳곳 눈 치켜 뜬 성채들

누구는 좌, 누구는 우를 읽고 가지만

그러든 말든 벼랑 끝에 붙어서

기어이 제 목소리를 펼쳐 보이는

겨울 담쟁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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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고 부르튼 손으로

세한歲寒의 계절을 움켜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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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덩굴이란 이름은 울타리()에 기어오르며 사는 덩굴이란 순수 우리말이다. 덩굴식물이지만 칡이나 등나무처럼 이웃하는 식물을 죽이거나 생육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라 덩굴손이라 불리는 흡반(吸盤)으로 다른 물체를 감지 않고 달라붙어 기어오른다. 한 포기를 심으면, 건물 벽을 따라 사방으로 퍼지는데, 건물 복사열 저감(低減)효과가 크고, 열매는 야생 조류나 설치류에게 먹이가 되며, 정서적, 심미적 편안함을 제공하는 등 생태계서비스 기능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오래된 토담이나 돌담과 어우러져 정겨운 전통 마을의 풍광을 창출한다.

이영식의 시 <겨울 담쟁이의 시>는 이 담쟁이의 겨울나기 모습을 그려낸다. 시인은 이 담쟁이를 중세의 성 같은 돌담 집 / 몇 길 높이 담벼락에서 보았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한 담쟁이가 아니라 담벼락에 시 한 편 걸려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담쟁이가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시로 본 것이다. 그 시는 겨울 담쟁이가 손으로 발로 / 온몸 밀어 올리며 쓴것으로 한 편만이 아니다. 담쟁이가 만든 시이니 육필원고일 것이요, 담벼락 전체에 펼쳐져 있으니 한 편이 아니라 여러 편의 시화전이리라. 시와 그림이 결합한 시화(詩畵)들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봄이나 여름 그리고 가을이면 담쟁이는 파릇파릇한 혹은 풍성하거나 누렇게 물 든 잎을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잎이 다 져버린 겨울이다. 이를 시인은 실핏줄로 겨우 이어붙인 아찔한 / 문장으로 파악한다. 즉 부드럽다거나 고운 어감의 명사나 형용사 즉 잎이 없으니 당연히 아름다운 형용사나 부사가 없는 바로 빛나는 수사修辭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름내 펼치던 구호즉 잎을 모두 떼어내고 / 생활전선에 바짝 붙어선 동사뿐이다.’ 거기에 담쟁이는 허리춤에 매달린 끝물 열매 몇 개를 달고 있지만 그마저도 새들에게 털리고줄기만 벽에 붙은 담쟁이 바로 알몸의 시는 겨울벽화로 붙어 있는 것이다.


중세의 성 같은 돌담 집이라 했으니 부잣집이리라. 그러니 방범을 위해 ‘CCTV가 곳곳 눈 치켜 뜬 성채들이다. 그 곳 벽에 걸린, 담쟁이가 써놓은 시들을 보고 누구는 좌, 누구는 우를 읽고갈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읽은 사람 몫이리라. 수구보수 좌측에 있으면 좌빨이 되고, 중도 오른편에 서면 보수꼴통이란 욕을 먹는 세상이다. 담쟁이는 그러든 말든 벼랑 끝에 붙어서 / 기어이 제 목소리를 펼쳐 보인다. 글쓴이의 의도와는 달리 보수적으로 해석하건 진보적으로 해석하건 담쟁이는 그런 데에 신경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 그대로만 표현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겨울 담쟁이의 시인 것이다.

추운 겨울, 눈보라에 지치겠지만 담쟁이는 벽에 붙어 서서 얼고 부르튼 손으로 / 세한歲寒의 계절을 움켜쥐고 있단다. 바로 시의 제목 그대로 겨울 담쟁이의 시이다. 사실 겨울철 담쟁이를 보면 참 지저분하다. 잎이 떨어지더라도 줄기라도 깔끔하게 남으면 모르겠지만 말라비틀어진 잎과 잎자루가 매달려 있고, 듬성듬성 검은 열매들과 함께 서로 굵기가 다른 줄기들이 얼기설기 퍼져 있는 모습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겨울 담쟁이를 한 편의 시로 읽는다. 그것도 한 편이 아니라 시화전으로 인식한다.

넓은 벽면을 채운 담쟁이 줄기 - 내 눈에는 지저분하게만 보였는데 이영식 시인은 그 모습을 담쟁이가 쓴 시, 그것도 육필 시화전으로 인식한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남다르다. 거기에 시적 상상력과 예리한 시선까지. 그래서 이런 시를 읽으면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인의 눈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