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장석주의 <대추 한 알>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0:5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3)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를 보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씨가 하나라고, 그래서 영의정을 의미한다고 제사상 제일 왼쪽에 자리하는 으뜸 과일을 생각한다면 제사상 진설 좀 해 본 사람일 것이다. 달콤한 대추차를 떠올린다면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요, 암적의 색깔과 길죽하고 둥근 모양의 앙증맞은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다른 생각을 한다. 대추 색깔이 어찌 저렇게 붉어졌을까, 대추 모양이 어떻게 저리 매끈매끈하니 둥글어졌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곤 나름대로 그 근거를 제시한다. 태풍, 천둥, 벼락, 번개가 대추를 붉게 만들었으며 무서리, 땡볕, 초승달이 대추를 둥글게 만들었다고 상상을 한다. 시인이 그렇게 말하니 마치 대추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저절로 붉어진 줄 알아? 태풍이 불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천둥치고 벼락이 때리고 번개가 번적 할 때 정말 무서웠어, 그런 무서움 다 이기느라 이렇게 얼굴이 붉어졌잖아. 어떻게 이렇게 둥글어졌냐고? 무서리 내릴 때 정말 추웠어. 땡볕에서는 또 얼마나 더웠는지. 초승달 뜬 밤이면 정말 외로웠어. 그런 추위와 더위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그저 내 몸을 둥글게둥글게 만들었던 거야.’

미당이 그랬던가, 자신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시인은 대추가 붉고 둥글어지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낸 다음, 결론을 내린다. 바로 대추는 세상과 통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통하지 않고는 결코 붉게 그리고 둥글어졌을 리가 없다고 한다.

어디 대추뿐이랴. 세상 만물이 다 그럴 것이다. 하물며 인간임에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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