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정완영의 <감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2:0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29)





감꽃

 

- 정완영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에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누워 있는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

 

 

흔히 감꽃이라 하면 감도 꽃이 피냐고 묻는다. 과일은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어 그 꽃이 수정이 되어 지고 나면 열매가 열린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잊고 묻는다. 아니 잊은 것이 아니라 감꽃보다는 감 자체를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나무나 나뭇잎을 보고는 그것이 감나무란 것조차 잘 모른다. 그런데 내게 감꽃은, 떨어진 그 꽃을 꿰어 목에 걸었던 어린 시절 옆집 순이의 환한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하와이 원주민 처녀가 꽃목걸이를 하고 머리에는 꽃을 꽂고 허리를 돌리며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다.


정완영의 시조 <감꽃>을 읽으면 순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현대 시조이기에 행 배열은 현대시를 따랐지만, 음보율이나 음수율은 옛시조 그대로 두 수로 된 연시조이다. 꽃이 진다는 것은 슬픈 일일 것이다. 그러니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 보는 이도 없는 날에조용히 꽃이 지는 것이요, 너무 슬퍼 푸른 산 뻐꾸기 울고꽃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노란 감꽃이 떨어져야 감이 열리는 것이요, 단지 감꽃만 떨어져누웠을 뿐이지만 떨어진 꽃은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든다.


시 속 화자는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 누워 있는 감꽃에게묻는다.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뭐라 답했을까. ‘여기가 그 자리라는 답이다. 바로 감꽃이 떨어져 누워 있는 그 자리 - 비록 떨어졌지만, 이제 감이 열릴 것이니 그 사명을 다하고 떨어져 편안하게 누운 자리는 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 그러니 감꽃 둘레 환하다는 것은 거짓이 아닐 터이다. 그것도 떨어졌지만 노란 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니 그러리라 생각한다. 감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제 할 일을 다하고 누운 자리이니 그곳이 바로 이 세상 한복판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그러니 누워 있는 감꽃 둘레는 당연히 환할 수밖에.


※ 사족 - 떨어진 감꽃은 수꽃이다. 암꽃은 수정 후 열매를 맺고 감꼭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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