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홍영수의 <동백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0. 22:09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30)







동백꽃

 

홍영수

 

핏빛

한 웅큼

툭 떨어진다.

심장

덩어리 하나

서녘 노을에

짙게 물들며

때가 되어

지구 위로

낙하하는

숭고한

찰나의 긴 별리.

 

 

동백꽃의 꽃말을 열정적 사랑(붉은 동백) 혹은 비밀스런 사랑(흰 동백)이라 하는데 그보다는 깨끗한 죽음이란 의미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다른 꽃과 달리 동백꽃은 꽃봉오리 채로 어느 순간 툭하고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꽃이 떨어져나간 자리에는 그 흔적도 찾기 힘들다. 멀쩡하게 잘 피어 있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떨어져버리는 동백 그래서 노인들 방에 동백꽃화분을 두지 말라고 한다. 동백꽃이 질 때, 바로 꽃봉오리 통째로 어느 순간 툭 떨어질 때 노인네들은 가슴까지 철렁 내려앉는단다.


홍영수의 시 <동백꽃>에는 동백꽃의 그런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깨끗한 죽음이란 꽃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한다. 보다시피 단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줄글처럼 이어 읽으면 별 감흥이 없다. 그런데 13행으로 나누어 읽다 보면 시인이 동백꽃이 지는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핏빛 / 한 웅큼 / 툭 떨어진다.’고 했다. 꽃봉오리가 통째로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의 낙화 모습이다. 이렇게 제시를 해 놓고는 그 의미를 부여한다. ‘핏빛 / 한 웅큼인 동백꽃이 심장 / 덩어리 하나로 묘사된다. ‘심장 덩어리 / 하나가 아니라 심장 / 덩어리 하나이다. 행갈이를 통해 덩어리 즉 꽃봉오리 통째란 의미가 강조된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서녘에 노을이 질 때는 저녁이다. 인생의 황혼기라 해도 될 것이다. 붉은 동백이 노을빛에 더 붉어질 것이다. 그리고 꽃이 떨어진다.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 위로 / 낙하한다. 시인의 눈에는 단순히 꽃이 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공간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것이다. 지구로 떨어진다? 바로 현실이다.

여기까지는 그저 행갈이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다음 3행을 읽으면 무릎을 치게 된다. ‘/ 숭고한 / 찰나의 긴 별리라니. 이별(離別)은 단순히 헤어지다, 나뉘다를 말하지만 별리(別離)따로 떼어놓다는 뜻이 강하다. 우주의 기운일까. 그러니 숭고하다고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찰나시간이 대비된다. 꽃이 떨어지는 시간은 찰나이지만 떨어진 다음은 긴 별리일 것이다. 숭고한 것은 찰라일까 아니면 긴 별리일까. 답은 독자의 가슴속에 있다.


동백이 꽃봉오리를 맺어 꽃을 피울 때 그것은 이상향을 그리는 것이 되지만, 일단 꽃이 져서 땅에 떨어지면 그때는 현실이 되고 만다. 이상에서 현실로 오는 시간은 찰나의 순간이고 현실 속에 살아가는 것은 긴 별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모든 것이 숭고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동백꽃이 지는 모습을 보고 이런 우주의 기운까지 느낄 수 있을까. 하긴 그러니 시인이지 않겠는가.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효근의 <안개꽃>  (0) 2018.08.21
신동엽의 <창포>  (0) 2018.08.21
정완영의 <감꽃>  (0) 2018.08.20
나석중의 <노루귀>  (0) 2018.08.20
김종원의 <채송화>  (0) 2018.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