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복효근의 <안개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31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32)







안개꽃

 

복효근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안개꽃도 마찬가지이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끼손톱보다 작은 오밀조밀한 꽃송이들이 하얗게 혹은 연분홍으로 눈을 유혹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개꽃이라 하면 안개꽃 그 자체보다는 꽃이 감싸고 있는 장미나 백합을 먼저 떠올린다. 꽃꽂이를 하며 혹은 꽃다발을 만들며 언제 누가 그렇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안개꽃이라 하면 흔히 꽃다발 속 주변을 감싸고 있는 잔잔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분명 꽃인데, 안개꽃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언제나 조연에 그치고 마는 자신의 처지에 신경질이 날 것만 같다.


그런데 복효근의 시 <안개꽃>을 읽다 보면, 주연보다 아름다운 조연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하긴 모두가 주연이려고만 한다면 조연이나 단역은 누가 하겠는가.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고, 단역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도 있어야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어쩌면 관객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아예 처음부터 조연을 자처한다. ‘꽃이라면 / 안개꽃이고 싶다. ‘부서지는 햇빛이라 할 꽃다발 속 주인공인 장미나 백합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 안개이고 싶다고 한다. 빨간 장미나 하얀 백합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그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연분홍 혹은 하얀 안개꽃이 감싸고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장미나 백합이 더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이 안개꽃인 것이다. 시인은 서슴없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왜 그럴까. ‘나로 하여 /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좋겠다는 것이요, ‘네 몫의 축복 뒤에서 /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는 것이다. 주연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조연, 피사체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게 만드는 배경을 자처하는 시인. 이는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마침내 너로 하여 /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 시드는 목숨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네 덕에 나까지 향기로울 수 있으니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랑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로 하여금 너의 배경이 될 수 있게 해 준 너, 너의 아름다운 향기 덕에 나까지 향기로울 수 있는 은헤, 그러니 나는 너에게 빚을 진다는 말 - 이런 생각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복효근의 시 <안개꽃>을 읽고 나면, ‘안개꽃은 물론이거니와 시인의 생각마저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는 누구의 배경이 되어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고 그 덕에 나까지 향기로워지는 빚을 질 수 있을까. 나도 그런 빚을 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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