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김춘수의 <물망초>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35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34)





물망초

 

- 김춘수

 

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그러면서 아득히 먼

그대의 모습,

하늘의 별일까요?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나를 잊지 마셔요.

그 음성 오늘 따라

더욱 가까이에 들리네

들리네

 

 

아니 물(), 잊을 망(), 풀 초() 이름 그대로 나를 잊지 말라는 꽃, 물망초는 본디 고산식물이라 키가 작은 것들이 많고 바위 틈 같은 곳에서 잘 자란다. 그러니 높은 바위 사이에 핀 꽃을 따주려다 떨어져 죽어가며 나를 잊지 말라고 했다지 않은가. 요즘이야 워낙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원예종으로 개량된 품종들이 많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게다가 크기가 작아 다른 꽃들과 섞어 화단을 장식하기에도 좋다.


김춘수의 시 <물망초>물망초의 특성과 꽃말을 통해 그 의미를 한 여인에게로 환치시켜 놓고 있다. 김춘수가 누구인가. 그의 시적 특질은 존재에의 탐구, 서술적 이미지, 탈이미지, 종교 혹은 예술에 대한 성찰 그리고 무의미의 시로 요약되는 시인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물망초>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어느 매체에 따르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라고 하는데, 김춘수 시인의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시 자체가 소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1연에서 물망초가 피는 곳의 특질을 통해 그대 = 이라 한다.물망초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그러면서 아득히 먼산비탈 바위틈에 피는 고산식물이다. 시인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 그대로 환치시킨다. 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그러면서 아득히 먼곳에 그대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의 별일까요?’라 했다.

1연이 서식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2연은 꽃말과 연결된다. 바로 ‘forget-me-not’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 지금은 옆에 없지만 시 속 화자는 그대를 그리고 있다.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그대는 화자에게 나를 잊지 마셔요.’라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날 그대가 한 말, 비록 옆에 없어도 그 음성 오늘 따라 / 더욱 가까이에 들리는 것처럼 느낀다. 아니 들린다고 한다. 게다가 행갈이를 하여 다시 들리네라 반복하여 강조한다.


물망초란 꽃의 본디 서식지의 특성과 꽃말을 묶어 두 연으로 된 아름다운 시로 만든 것은 바로 김춘수라는 시인의 상상력이다. 혹자는 시 제목을 보고 물망초를 눈 앞에 그려 볼 것이요 또 누군가는 이 시를 읽으며 떠나간 어느 여인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물망초를 보며 정말 어느 여인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해석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어쩌면 김춘수 시인도 물망초를 보며 문득 한 여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를 잊지 말아요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인이 잊지 못하고 있는, 하늘의 별이 된 어떤 여인을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아니 아련한 추억에 잠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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