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34)
물망초
- 김춘수
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그러면서 아득히 먼
그대의 모습,
― 하늘의 별일까요?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 나를 잊지 마셔요.
그 음성 오늘 따라
더욱 가까이에 들리네
들리네
아니 물(勿), 잊을 망(忘), 풀 초(草) — 이름 그대로 나를 잊지 말라는 꽃, 물망초는 본디 고산식물이라 키가 작은 것들이 많고 바위 틈 같은 곳에서 잘 자란다. 그러니 높은 바위 사이에 핀 꽃을 따주려다 떨어져 죽어가며 ‘나를 잊지 말라’고 했다지 않은가. 요즘이야 워낙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원예종으로 개량된 품종들이 많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게다가 크기가 작아 다른 꽃들과 섞어 화단을 장식하기에도 좋다.
김춘수의 시 <물망초>는 ‘물망초’의 특성과 꽃말을 통해 그 의미를 한 여인에게로 환치시켜 놓고 있다. 김춘수가 누구인가. 그의 시적 특질은 존재에의 탐구, 서술적 이미지, 탈이미지, 종교 혹은 예술에 대한 성찰 그리고 무의미의 시로 요약되는 시인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물망초>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어느 매체에 따르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라고 하는데, 김춘수 시인의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시 자체가 소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1연에서 ‘물망초’가 피는 곳의 특질을 통해 ‘그대 = 별’이라 한다. ‘물망초’는 ‘부르면 대답할 듯한’ 곳,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곳 ‘그러면서 아득히 먼’ 산비탈 바위틈에 피는 고산식물이다. 시인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 ‘그대’로 환치시킨다. 즉 ‘부르면 대답할 듯한’ 곳,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곳 ‘그러면서 아득히 먼’ 곳에 그대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 하늘의 별일까요?’라 했다.
1연이 서식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2연은 꽃말과 연결된다. 바로 ‘forget-me-not’ 즉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 지금은 옆에 없지만 시 속 화자는 ‘그대’를 그리고 있다.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그대’는 화자에게 ‘― 나를 잊지 마셔요.’라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날 ‘그대’가 한 말, 비록 옆에 없어도 ‘그 음성 오늘 따라 / 더욱 가까이에 들리’는 것처럼 느낀다. 아니 들린다고 한다. 게다가 행갈이를 하여 다시 ‘들리네’라 반복하여 강조한다.
‘물망초’란 꽃의 본디 서식지의 특성과 꽃말을 묶어 두 연으로 된 아름다운 시로 만든 것은 바로 김춘수라는 시인의 상상력이다. 혹자는 시 제목을 보고 ‘물망초’를 눈 앞에 그려 볼 것이요 또 누군가는 이 시를 읽으며 떠나간 어느 여인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물망초’를 보며 정말 어느 여인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해석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어쩌면 김춘수 시인도 ‘물망초’를 보며 문득 한 여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를 잊지 말아요’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인이 잊지 못하고 있는, 하늘의 별이 된 어떤 여인을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아니 아련한 추억에 잠겼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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