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구재기의 <상사화>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46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36)







상사화(相思花)

 

구재기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지나는 바람과 마주하여

나뭇잎 하나 흔들리고

네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내 가슴 온통 흔들리어

네 또한 흔들리리라는 착각에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속의 날 지우는 일이다

 

 

상사화는 수선화과 상사화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상사화라 알고 있는 꽃무릇혹은 석산이라 불리는 붉은 색 꽃과는 전혀 다른 꽃이지만, 잎이 지고 나서 꽃이 피는 특성은 같다. 이름 그대로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재기의 시 <상사화(相思花)>는 상사화의 그러한 특성을 바닥에 깔고 있다. 잎이 먼저 나서 다 지고나면 그제서야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우니 꽃과 잎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 꽃과 잎은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상사화의 꽃과 잎은 그리워하지만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를 붙여 놓은 것이다. 다만 구 시인은 단순히 그리워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 사랑을 애절하게 속된 말로 구질구질하게 구걸하는 모습으로 그리지 않는다.


첫 연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가 바로 그러한 자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너를 지극히 사랑하고는 있지만 이는 오로지 나의 뜻일 뿐 네가 나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2연에서는 1연을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네가 보이지 않으면 내 가슴이 흔들리는 것처럼 내가 안보이면 너도 흔들릴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이지 실제로 네가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안다 해도 그 역시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마음일 뿐이다. 그러니 3연의 표현은 지극히 자연스런 말이다.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 내 가슴속의 날 지우는 일이다는 결국 내 마음은 나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지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에 너의 책임은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럴까. 겉으로 드러난 표현은 담담하고 어쩌면 당찬 사랑의 표현이지만, 시 속 화자인 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지고 나아가 사랑의 지극함이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얼마나 사랑을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구 시인의 사랑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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