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도종환의 <모과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50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38)







모과꽃

 

도종환

 

모과꽃처럼 살다 갔으면

꽃은 피는데

눈에 뜨일 듯 말 듯

 

벌은 가끔 오는데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모과꽃처럼 피다 갔으면

 

빛깔로 드러내고자

애쓰는 꽃이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으로

 

나무 사이에 섞여서

바람하고나 살아서

있는 듯 없는 듯

 

 

많은 사람들이 모과꽃을 잘 모른다. 사과, , , 복숭아, 자두…… 등 온갖 과일들의 꽃은 잘 알고 있으면서 모과꽃은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은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봤어도 그냥 지나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실의 꽃인 매화나 복숭아의 꽃인 복사꽃이 필 무렵이면 지역별로 따로 축제를 열 정도이다. 어디 그뿐인가. 배나무 사과나무 그리고 자두나무에 꽃이 필 때면 과수원은 온통 흰물결이다. 그 꽃들이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으나 실은 잎이 나기 전, 가지 끝에 곧바로 피는 꽃이기에 그만큼 눈에 잘 뜨일 뿐이다.


이에 비해 모과나무는 5월이 되어야 꽃을 피운다. 순이 나오고 자라 활짝 벌어져 잎이 무성할 때이다. 게다가 꽃향기도 진하지 않다. 그러니 잎과 가지에 가려 언제 꽃이 피었는지 졌는지 모르게 그냥 지나치게 되고 7, 8월이 지나며 작은 열매가 열려도 크게 눈에 뜨이지 않는다. 가을날 잎이 떨어지며 노란 빛깔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을 때에야 비로소 모과는 빛이 난다. 시고 떫어 먹지는 못하지만 그 노란 빛깔은 눈을 자극하고 그 향기는 모든 이들을 매료시킨다.

도종환의 시 <모과꽃>을 읽으면 바로 모과꽃의 이러한 특성을 여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모과꽃처럼 살다 갔으면’, ‘모과꽃처럼 피다 갔으면하는 삶의 지향까지 밝히고 있다.

모과꽃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분명 꽃은 피지만 잎에 가려 눈에 뜨일 듯 말 듯하는 것처럼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조용한 삶아 아닐까. 특별히 진한 향기가 없으니 벌이 가끔 찾는다 해도 향기 나는 듯 마는 듯한 꽃이다. 게다가 빛깔 또한 원색이 아니라 은은한 분홍빛이니 빛깔로 드러내고자하는 꽃이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이다. 잎이 무성해서야 꽃이 피니 나무 사이에 섞여서 / 바람하고나 살아서 / 있는 듯 없는 듯한 꽃이다.


시행에 연이어 나오는 눈에 뜨일 듯 말 듯’,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조금씩 지워지는 빛’, ‘있는 듯 없는 듯한 꽃 - 이것이 바로 모과꽃과 같은 삶일 것이다. 요란한 삶이 아니라 조용한 삶, 세상에 드러난 영웅과 같은 삶이 아니라 속세에 묻힌 범부의 사람. 바로 겸손한 삶, 소박한 삶일 것이다. 대장부로 태어나 뭔가 큰 뜻을 펼치겠다는 포부가 아니라 눈에 뜨일 듯 말 듯’, ‘있는 듯 없는 듯이 살다 가겠다는 시인의 소박한 꿈이다.


그런데 모과꽃을 보며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시를 읽고서야 모과꽃을 인식하며 맞아, 모과꽃은 이런 거야라 무릎을 치는 나는 그저 시인의 관찰력과 이어지는 통찰력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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