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변형규의 <찔레꽃>

복사골이선생 2018. 8. 21. 01:54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 (40)







찔레꽃

) --> 

변형규

) --> 

앙탈도 귀엽던 단발머리 가시내

팔목이 가늘어 호미자루 무겁다더니

돈 많고 잘산다는 서울로 팔려 가서

몸도 마음도 오지리 뺏기고

앙칼지게 가시만 달고 와서는

봄날, 논두렁에 퍼질고 앉아 운다.

해도 기운데 들어가지 않고

오빠 미안해요 퍼질고 운다.

오월 한 달을 하얗게 운다.

) --> 

) --> 

찔레꽃은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들의 기슭과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양지 혹은 반그늘의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찔레는 장미과이니 장미꽃의 사촌쯤 되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향도 참 좋다. 같은 장미과이니 그 모양이 비슷하기에 흔히 혼동을 하는데 장미가 온실 속 공주라면 찔레는 산과 들에 제멋대로 자라는 시골 처녀이다. 하긴 서양에서는 ‘wild rose’라 부른다는데 이름 그대로 들장미라 할 수 있다. 내 기억 속에도 장미는 화단에 심어 잘 가꾸는 꽃이지만 찔레는 산과 들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꽃이다.


그런데 찔레는 장미처럼 가지에 가시가 돋아 있다. 그러니 가시덤불을 이루어 산길을 가자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봄에 돋아나는 연한 찔레순은 가난하던 시절 우리들의 요긴한 간식거리였다. 달작지근한 그 맛은 웰빙시대를 맞아 영양가 만점의 먹거리로 채취되기도 한다. 게다가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쯤 하얀색 또는 연분홍 꽃이 피는데 소박하면서 은은한 향기와 함께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아주 잘 맞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문학 작품 속 찔레꽃은 대부분이 슬픈 모습이다. 변형규의 시 <찔레꽃>도 마찬가지이다. 시 속 찔레꽃은 한창 산업화를 이루던 시절, 도시로 나간 시골 처녀가 서울에 가서 몸도 마음도 황폐해져 귀향해서는 울고 있는 모습이다.

시 속 화자는 앙탈을 부리는 것도 귀엽던 시골의 단발머리 가시내와 사랑을 했던 모양이다. 내숭이었는지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호미자루도 무겁다고 할 정도로 약한, 팔목이 가는 소녀였다. 그런데 돈 많고 잘산다는 서울로 팔려 가서는 몸도 마음도 모두 망치고 앙칼지게 가시만 달고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논두렁에 퍼질고 앉아 운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는 화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쩌면 인과응보라고, 나를 버리고 서울로 가더니 쌤통이라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해도 기운데 들어가지 않고울고 있는 여자, 화자에게는 오빠 미안해요라 말하며 계속 퍼질고 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화자 역시 가슴이 찢어지지 않았을까. 마지막 행 오월 한 달을 하얗게 운다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어쩌면 화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찔레꽃의 모양을 알고 있으니 굳이 연결하자면 시 속 어휘 중 팔목이 가늘어’, ‘가시’, ‘오월 한 달’, ‘하얗게…… 정도가 찔레꽃을 나타내는 단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시 속 이야기와 찔레꽃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시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시내와 찔레꽃을 하나로 본다. 즉 찔레꽃은 오월 한 달 하얗게 울던 그 가시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찔레꽃을 보며 어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아니 이야기 속 가시내를 어떻게 찔레꽃으로 환치시킬 생각을 했을까. 시인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그에 비해 문득 시 속 그 가시내가 지금 어찌 되었을지 궁금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 속물인 모양이다.



'시인이 본 꽃·나무·열매·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윤현의 <괭이밥>  (0) 2018.08.21
이정하의 <복사꽃>  (0) 2018.08.21
최제형의 <아카시아꽃>  (0) 2018.08.21
도종환의 <모과꽃>  (0) 2018.08.21
윤제철의 <과꽃>  (0) 2018.08.21